버스 안에서 처음 책을 펴서 몇장 읽어보는데 눈물이 핑돌았다.

누가 볼까 책을 황급히 덮고 눈을 깜빡이고 창밖을 보았다.

이 늦가을 낙엽들이 부산하게 바람에 흩날리고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파란 하늘과 자동차들이

낙엽 위에 얹혀져있다.


連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이 책은 더 이상 살수 없다고 선고 받은 사람들이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10년 넘게 하신 비구니 능행스님의 책이다.

서정주님의 '連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의 싯귀를 제목으로 삼은 이 책은 정토마을이라는

불교 호스피스에서 만난 수많은 환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이 책에서 죽음이 삶과 이어져

있고 영원과 만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스님은 혼신을 다해 말씀하신다.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삶이나 30년 혹은 50년이나 남은 삶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산다는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찰나의 순간이 영원의 삶이고, 이 찰나의 순간이

진실한 생명이다.

삶이 아름다울 때 비로소 그 죽음 또한 아름다울 수 있듯이...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곧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로 바뀐다. 진정 하루 하루를 잘 사는 삶이야 말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죽음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중생에게 병이 있는 한

병에서 완전히 나을 때까지

저는 약과 의사와

그들의 간병자로 남기를 바라옵니다.

절망하고 가난한 중생에게

제가 다함없는 재물이 되고 그들에게 필요한 여러가지 도구가 되어

그들 곁에 항상 머물게 하소서

허공끝에 이를 때까지

갖가지 모든 중생계에도

그들 모두가 고통에서 벗어날 때까지

제가 그들의 삶의 근원이 되게 하소서

중생의 병을 완전히 없애주는

약 또한 이것이며

윤회의 길에서 헤매다 지친

중생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푸른 나무입니다.

                                                      -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Posted by 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