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목적지는 K2 BC(베이스캠프)이다. 마침내 이 트레킹의 마지막 지점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콩코르디아에서K2 BC(5135m)까지의 거리는 10Km이며 대략 5시간 정도 걸린다.
대부분의 트레킹 팀은 K2 BC에서 잠을 자지 않고 하루에 왕복을 한다. 콩코르디아보다 고도가 대략 500미터 정도
높아 고소증이 오기 쉽기 때문이다. 이 길을 왕복하려면 8~9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번 시즌 K2 BC에는 한국팀 2팀을 포함하여 14팀이 들어와 있다고 한다.
한국팀은 부산원정대와 오은선씨가 주축이 된 여성원정대의 2팀이다. 이들 외에도 러시아 원정대 등등 역시 공산님의 취재계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K2 BC에서만 2박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틀 뒤 콩코르디아로 돌아가, 가셔브롬 I BC를 갈 건지 아니면 바로 하산할 건지 그 때 결정하기로 하였다.
우리가 하산하기로 한 곤도고로 패스는 아직까지 눈사태로 인하여 막혀있다고 한다.
우리는 콩코르디아에 모든 장비를 그대로 둔 채 침낭과 음식물 일부를 싸가지고 포터인 아하마드를 대동하여 K2 BC로 출발하였다.
K2 BC를 향한 길은 콩코르디아의 빙하동굴(snow bridge)위에서 출발한다. 빙하동굴 너머 맞은 편에 길의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K2는 콩코르디아에서 정북쪽에 위치하며 이곳을 흐르는 빙하는 발토로빙하가 아니라 고드윈 오스틴 (Godwin Austen)빙하이다. 사실 K2는 이전에 '마운틴 고드윈 오스틴‘이라고 불렸었는데, 1861년 탐험가이자 측량가인 고드윈 오스틴이 이 산의 접근로를 처음으로 찾아냈기에 그를 기리기 위하여 붙였다고 한다.
산의 이름은 K2로 바뀌었지만 빙하의 이름은 그대로 남은 것이다.
< 미터 피크 >
출발한지 대략 30분정도 지나서 고드윈 오스틴 빙하로 접어들었다. 돌아온 길을 뒤돌아보니 미터 피크가 우뚝 서있다.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므로 저 멀리 발토로 빙하의 흐름이 띠처럼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 콩코르디아 방향 >
날씨는 점점 흐려지고 있어서 멀리 K2는 구름속에 잠겨있다. 가는 길 우측에 포진하고 있는 브로드피크 역시 짙은 구름 속에 가려져 있다.
<K2 방향 >
<구름이 더욱 몰려드는 K2 >
높은 고도 때문인지 한걸음 한걸음 떼는 것이 너무 힘들다. 몸에 붙어 있는 모든 것이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사진기를 꺼내 사진 찍는 것도 쉽지 않다. 10분가다 쉬기를 반복하는데 멀리 텐트촌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략 4시간 만에 브로드피크 BC에 도착하였다.
<브로드피크 BC >
브로드피크는 한 때 K3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브로드피크는 브로드(broad, 넓은) + 피크(peak, 봉우리) = 넓은 봉우리라는 뜻으로 정상부가 널찍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주봉(8047m), 중앙봉(8006m), 북봉(7538m)의 3 봉우리가 넓게 포진하여 정상부를 이루고 있다.
브로드피크는 1957년 낭가파르밧을 초등한 헤르만 불이 포함된 오스트리아 원정대에 의하여 초등되었다.
마침 브로드피크 등정 50주년 기념에다 입산료를 반으로 깎아주어서 평소보다 많은 27개팀이 등반에 나섰다고 한다. 몇일 전 만나본 김재수·고미영팀은 브로드피크를 성공리에 등반을마치고 하산 중이었던 것이다.
<고드윈 오스틴 빙하 >
<상류로 갈수록 빙탑이물결치고 있는 고드윈 오스틴 빙하>
브로드피크 BC의어떤 캠프에서 가이드가 아는 척을 하더니 지나가는 나에게 차 한잔을 권한다. 너무 힘든지라
기꺼이 쉬어갔다. 공산님은 먼저 앞에 가서 보이지 않고, 요사니는 뒤에 있는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다.
다시 지친 몸을 추스려 길을 떠난다.
꽤 높은 고도에 올라왔는지 고드윈 오스틴 빙하가 물결 치는 것이 보인다. 양쪽으로는 빙하이고 모레인 지대는 구릉처럼 솟아있다. 상류로 올라갈 수록 작은 빙탑들이 수 없이 솟아나고 있다.
<브로드피크side -by yosanee>
<브로드피크side & yosanee>
앞에 구름에 쌓여 하단부만 보이는 K2를 향하여 계속 전진한다. 그러다 길을 잃었다.
작은 개울 건너 우측으로 난 모레인 지대로 가야하는데 앞에 보이는 산을 향해 전진하다보니 길을 잃은 것이다.
나중에 알게된 것은, 앞에 보이던 K2의 하단부는 K2가 아니라 엔젤피크(Angel Peak)의 하단부였던 것이다.
날씨 흐린 날 많은 사람들이 K2로 착각한다고 한다.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얼음과 돌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 단순한 공간에 안개처럼 짙은 적막감이 흐른다.
모레인지대의 높은 곳으로올라가서 둘러보니 빙하 계곡 넘어 멀리 떨어진 저쪽에 텐트들이 보이지만 건너 갈 수 없다.
빙하 사면을 몇 개 건너 K2 BC로 넘어 가려 했지만 사방은 위험천만이다. 한번 빠지면 올라올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멀리 뒤에 요사니가 점으로 나타난다.
요사니와 상의하여 올라왔던 길을 다시내려갔다.
적어도 1시간 반이상을 헤맨 것 같다. 몸이 지칠대로 지쳐 한 발짝 떼기도 어렵다.
마침 포터인 아하마드가 마중을 나왔다.
이렇게 K2 BC에 겨우 도착하였다.
< K2 Base Camp >
공산님은 한참 전에 도착하여 지친 우리를 맞는다.
우리는 부산원정대의 식당텐트로 바로 안내되어 차와 간식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였다.
원래 부산원정대의 정식 명칭은 “2007 다이나믹 K2·브로드피크 원정대”(대장 홍보성)이다.
이들은 우리가 호불체에서 우르두까스로 향하는 발토로 빙하 위를 개미처럼 움직이고 있던 날인 7월 20일 K2를
성공리에 등반하였다. 또한 오은선씨의 여성원정대 역시 같은 날 정상에 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어제인 22일 K2 등정을 마치고 전체 원정대원이 BC까지 무사히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한국팀 캠프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마지막 캠프에서 정상 등정 중 니마노르부 셀파가 낙석을 피하다
추락사한 것이 그 이유였다.
저녁 시간 부산원정대의 지휘본부 텐트에 모두 모여서 K2 정상을 오른 것을 자축하였다.
텐트 밖으로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 K2 정상에 오른 김창호대원과 김진태대원 >
< K2 정상에 오른 오은선대장>
돌이켜 보면 삶이란 얼마나 오묘한 것인가.
우리가 발토르 빙하 위를 걷다 더위에 지쳐서 날씨가 흐려져 구름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 ‘8000미터의 위와 아래’에 있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죽음의 그림자와도 같은 것이리라.
또한 저 멀리서 구름에 가린 K2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의 한 편에 생사의 갈림길이 있는 것이다.
K2 정상부근에서 비박하는 이에게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 K2에서 시간은 중심부인 정상을 향할수록 늦어질 것이다.
모든 이들은 저마다 다른 차원의 시계를 차고 있다. 시간은 있는 공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은 찰나의 순간에 삶을 생과 사의 편으로 나눈다.
K2 BC를 다녀왔다는 새로운 경험을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내가 최고의 높이에 도달한 지점에서부터
만년설은 시작되며 새로운 길, 경험의 또 다른 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트레킹의 끝에는 또 다른 형태의 경험, 즉 빙(氷)과 설(雪)과 고독이 함께 하는 길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경험은 지층과도 같다. 한 층의 결을 따라 움직여 나가긴 쉽지만 층과 층 사이를 넘나드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경험의 관성이 아니라 인간의 관성이다. 따라서 삶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경험들은 자신의 염원과 관성에 이끌려 지극히 개인적이고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삶의 경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눕체능선을 바라보면 자신이 세계의 일부로 느껴진다. 그리고 아콩가구아 산기슭에 있는 돌투성이 에르코네스 빙하를 걸어갈 때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다. ...
그래서 나는 인생에서 등반을 중요하게 본다. 극한 영역이라는 것은 상대적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돌로미테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이 극한 영역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작고 평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강력한 실존 체험을 맞보게 될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을 경험한다는 것은 ‘사는 것’ 자체를 가리킨다.”
어떤 경우 서로 다른 경험들은 비슷한 크기의 어려움을 수반할 것이다.
경험의 질이 부여하는 개개의 차이가 객관적으로 없을지라도, 아주 단순한 경험조차 자기가 의미를 부여할 때
큰 깊이로 느껴지게 될 것이다.
트레킹과 정상 등반은 무엇이 다른가. 즉, 트레킹족과 원정대족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 차이는 염원의 차이일 것이다.
정상을 꿈 꿔왔다면 오직 거길 향해 오르려 할 것이고, 그에 따라 트레킹처럼 과정으로서의 길이 힘은 들겠지만
더 큰 목표에 묻혀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될 것이다. 반면 트레킹이 단지 BC같은 곳을가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가장 큰 목표가 되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지쳐서 돌아갈 궁리만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경험의 축은 결국 각자가 꿈꿔 온 염원에 의해서 달라지게 될것이다.
한 때 자신이 설정한 최고점에 다다랐거나 다다르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 자기가 체험하지 못한 경험의 또 다른
일면을 의미있게 바라 볼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이 누구인지알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한계 또한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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