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천왕일출 (天王日出), 노고운해 (老姑雲海), 반야낙조 (般若落照), 직전단풍(稷田丹楓), 벽소명월(碧宵明月),
세석철쭉(細石철쭉), 불일현폭(佛日懸瀑), 연하선경(煙霞仙境), 칠선계곡(七仙溪谷), 섬진청류(蟾津淸流).
800리 지리산 굽이굽이에는 지리산 10경이 있다.
지리산에서 특히 천왕봉의 일출은 3대에 걸쳐 적선을 해야지만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굳이 힘들여서 지리산을 찾는 이유는 바로 그 곳에 가야 그 경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같은 산이라도 매일 매시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사계에 따른 나뭇잎의 흥망성쇠가 보태지고, 시간대와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황홀한 태양빛과 신출귀몰한 운무의 이동. 밤에 느껴지는 산의 적막감과 온통 눈에 덮힌 백색의 풍경. 사실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을 산으로 모는 것이 아닐까?
또한 사람들이 암벽을 하려고 하는 까닭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일하나를 생명의 끈처럼 의존하며 올라가는 이유에 대하여…
그 이유는 그 곳에 가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완전히 색다른 경치가 있기 때문이다. 오직 그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광 말이다.
II.
에베레스트, K2, 칸첸충카, 로체, 마칼루, 초오유,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낭가파르밧, 안나푸르나, 가셔브롬1,
브로드피크, 가셔브롬2, 시샤팡마.
2400Km 길이의 히말라야 산맥에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8천미터 이상의 고봉이 14개가 있다.
히말라야의 범위는 인도대륙 북쪽에서 중앙 아시아 고원 남쪽을 동서로 길게 잇는 만년설의 산맥이다.
히말라야(Himalaya)라는 말은 고대 인도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눈(雪)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居處)를 뜻하는 알라야(Alaya)의 합성어로 '눈의 거처', 즉 만년설의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왜 지구 최고의 극지인 히말라야를 오르려는 것인가?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그 경치와는 큰 관련이 없을 것이다.
히말라야의 8000M 급 고봉을 경치하나 좋다는 이유만으로 오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III.
가끔 동일한 꿈을 꾼다.처음엔 꿈인지 알턱이 없었다.
또 다시 직벽이 나타난다. 늘상 보던 벽이다.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모호함속에 암벽을 혼자 프리스타일로 오른다.
이제 꿈 속에서만 그게 꿈이라는 것을 알 뿐이다.
손이 축축해온다.
< 캠프 1 을 향하여 - photo by 부산원정대 >
< 캠프간 이동중 - photo by 부산원정대 >
IV.
부산원정대는 6월 19일 캠프 1(6000m), 6월 21일 캠프 2(6700m), 6월 24일 캠프 3(7350m), 6월 27일 캠프 4(8060m)를
설치하였고 악천후로 정상 등반이 연기되다 7월 20일 정상에 오르게 된다.
여성원정대의 오은선대장 또한 같은 날 등정에 성공하였다.
< K2 정상 - photo by 부산원정대 >
< 캠프 4 - photo by 부산원정대 >
< 캠프 4 부근 : 뒤로 보이는 산이브로드피크와 가셔브롬III, IV- photo by 부산원정대 >
V.
오은선씨는 '허공에 떠 있던 그날 새벽'을 이렇게 회상한다.
“낙석!”하고 외친다. 순간 위를 보았더니 내 손바닥보다 큰 돌덩이가 떨어진다. 나의 오른쪽으로 비켜가는 방향이다.
무심히 떨어지는 돌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바로 두 발자국 정도 앞에 있던 부산등반대의 니마노르부 셀파가 돌을 피하는 동작을 취하면서 옆으로 이동하는 것과 동시에 추락을 한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안이 벙벙하다.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냥 계속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
다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한 발자국이라도 내디뎠다가는 나도 저 아래 천 길 낭떠러지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 오은선 (사람과 산 2007. 9)
< D-Day 캠프 4(8060m)에서 정상을 향하여- photo by 부산원정대 >
VI.
라인홀트 메스너에게 정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극점인 정상에 가지 않으면 못 견디냐고 나는 전부터 스스로 물어왔다. 사람은 누구나 정상에 서고 싶어한다. 그 정상이란 반드시 산의 꼭대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종점이자 모든 것이 모여드는 곳.
소재가 소생하고 그 모습을 바꾸는 지점이라는 뜻이다. 이 지점은 적어도 상징적인 의미에서, 세계가 무(無)로 바뀌는 곳으로서 모든 것이 완결되는 끝이며 마력이나 자력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지점이다.
그리고 낭가파르밧을 단독 등반했을 때정상에서 "나와 정상은 하나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다르다."라고 중얼거린 후 정상에 앉아 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8000미터 봉우리 위에 그대로 눌러 앉으면 어떨까 하고 가끔 생각했다. 등반의 본래뜻은 정상에 머무는 일이 아닐까?
겨우 도망쳐 나온 세계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 것이 맞지 않을까?
정상에서 느낀 자연과 자신이 하나가 된 '의식의 확장'을 열반에 비유하고 있다.
끝없는 공산(空山) 한가운데 있는 정상에 나는 앉아 있었다. 깊숙한 골짜기에 뿌연 안개가 깔려있다. 주위의
지평선이 내마음의 공허감처럼 부풀러 올랐다. 깊은 호흡을 내뱉자 환상적인 동그라미가 나타났다. 표현하기
어려운 해탈감이 다가왔다. 나는 이 조화를 이룬 상태, 열반과도 같은 경지에서 깨어났다.
< K2 정상 - photo by 부산원정대 >
< K2 정상에 선 사람들(좌로부터 오은선, 김진태, 김창호대원)- photo by 부산원정대 >
< 정상에서본 발토로 빙하와 산군들- photo by 부산원정대 >
VII.
과연 정상(Summit)이 해탈이고 열반인가.
그 길을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그것에 대해 어림짐작하는 것도 능력 밖의 일이다.
생각해 보면 등반을 하는 산악인들의 초인적인 인내와 구도적 자세를 보건데 정상을 오르는 행위는 수행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메스너가 말한것 처럼 정상이란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닐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곳이리라.
정상 역시도 과정인 것이며, 정상 이후에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파티가 끝난후 처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그러한 경험도 서서히 망각되어 단지 꿈과 같은 흔적으로 남아 있다 사라질 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보면 정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가치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꿈, 자신의 염원이 그냥 달성된 것 - 그리고 노력의 대가로 몸에 그 소중한 경험이 각인되고 더 나아가 의식이 확장되어 삶을 바라보고, 사물을 수용하는 관점이 바뀐 것일 수 도 잇다.
경계 그 너머를 보고 직접 체험으로 느낀 그 소중한 경험은 삶의또다른 가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정상 그 이후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또 다른 도전으로 짐을 꾸리고 떠날 것인가. 또 다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바뀐 정상과 목표에 대한 열정을 불사를 것인가.
그러고 보면깨달음 이후에 저자거리로 나가 그 삶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십우도(十牛圖)의 입전수수(入廛垂手)야 말로 정상과 일상을 하나로 꿰뚫어 버리는 지고의 경지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진리를 알기전에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었다.(山是山 水是水)
스승을 만나 깨달음의 문턱에 들어서고 보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물이 아니더라(山不是山 水不是水)
그러나 마침내 깨닫고 보니 산은 다만 산이고, 물은 다만 물이더라. (山只是山 水只是水)
- 청원 유신선사(靑原 惟信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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