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7. 23:04

 


I.

 

'모든 욕망은 타자(他者)의 욕망'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삶은 타자와의 끊임없는 소통이다.

 

우리에게 있어 최악의 두려움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제외되어 혼자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특성상 사회적 관계를 삶의 생존조건에 있어서 가장 큰 요소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들은 혼자 있을 때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어느 심리학자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부정적 경험으로서 느끼는 것에 대하여 혼자 있을 때 '자신 내부에 혼란이 증가함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북적거리는 공간  - 자기와 비슷하면서도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쌓인 공간 - 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경험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피서철등에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해수욕장 같은 곳으로 발길을 돌리는 지도 모르겠다.

 

 

즉, 바글거리는 '타자'들이 우리와 비슷한 행동과 목표를 가지고 우리와 같이 존재하길 원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행은 '혼자 있고자 함'과 '함께 있고자 함'의 갈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누구도 완전히 혼자 있고 싶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낭가파르밧을단독 등반한 이후 저술한 그의 책 "검은 고독 흰 고독"에서 혼자있음의 고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물론 지금은 혼자 있는 것도 두렵지 않다.

이 높은 곳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 준다.

고독이 더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고독 속에서 분명 나는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더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그의 여러 책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극한에서 경험한'고독의 형태'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고독과 일맥상통하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다만 존재 본연의 실존적 모습이라는 점에서는 동질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검은 고독'을 '흰 고독'으로 바꾸었고, 고독에서 두려움 대신 힘을 얻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II.

 

 

K2로 향하는 우리 일행은 모두 3명이다. 空山과 요사니(아마도 요산이(樂山이)'라는 뜻일 듯) 그리고 '나'이다.

 

空山님께서는 내게 반산(半山)이라는 호를 하사(?)하셨는데, 강력하게 거부하였다.

 

半山이라 한 이유는 히말라야를 몇번 갔어도 정상은 오르지 않고 그 반(半)에 해당하는 베이스캠프까지만 갔다왔기

 

때문이라고 하였지만, 가뜩이나 몇 년 전 네팔의 히말라야에 바글바글했던 '반군(反軍)의 山'이라는연상 때문에

 

나는 극구 사양하였던 것이다.

 

아무튼 세명의 山자 돌림 사나이들은 1달에 가까운 여정에 호흠을 맞추기 위하여 단합대회를 가지게 되었고,보통의

 

술자리가 그렇듯 국지전이 일어나게 된다. 산을 오르기 위한'등정주의'와 '등로주의'에 대한 논쟁이 한참 술안주로

 

회자되다가, 낭가파르밧을 초등한 '헤르만 불'로 논쟁의 불씨가 튀었다. 결국 치열한 언쟁을 끝으로3자 단합대회는

 

K2로 향하기도 전에 해단식이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타자와 함께하는 여행은 늘 그 댓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외로움을 담보로 했건, 불안을 담보로 했건 말이다.

 

어쨌든 여행의 처음과 중간과 끝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III.

 

 

"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 사람안에 있는

당신의 한 부분을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면 어느 것도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

 

- 헤르만 헤세

 

 


몇 년 전 친형과 단둘이서 2달여간 네팔과 인도를 여행한 적이 있다.

 

2달간의 험한 여정으로 인해 정신과 육체는 지쳐갔다. 그리고 우리는 24시간 같은 공간에서 머물렀다.

 

내색은 안했지만 서로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여행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온 후 해방감을 느꼈다.

 

부끄럽게도 나는 몇몇 지인들에게 앞으로 다시는 형과 여행을 안하겠노라고 선언까지 하였다.

 

 

 

그로부터 6개월 정도지난 후 우연히 참석한 심리프로그램을 통하여 나는 내 속을 보게되었다.

 

놀랍게도 내가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던 사람은 '형'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형과 나는 일종의 '정신적 가족력'이었던 셈이다.

 

여행속에서 나는 24시간 '또 다른 나'와 지긋지긋하게 함께 했던 것이고, 나의 싫어함을 직면했던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이 귀중한 여행을 감사히 생각한다. 누구한테나 오긴 어려운 천재일우의 기회였기에 더욱 그렇다.

 

 

 

결국 삶의 모든 여행은 타자(他者)를 통해 자신과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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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