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06.09.08 1905년 6월 9일 5
2006. 9. 8. 01:15

사람들이 영원히 산다고 생각해보자.




이상하게도 도시마다 사람들은 두 가지 종족으로 갈라진다. 나중족들과 지금족들이다.

나중족들은 서둘러 대학에 가거나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고, 볼테르나 뉴튼을 읽는다거나 직장에서

애써 승진할 필요도 없고, 사랑에 빠지거나 자식을 낳아 기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온갖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시간에 끝이 없으므로 무슨 일이든지 이룰 수 있고 따라서 무슨

일이든지 뒤로 미룰 수가 있는 것이다. 사실 서두르다 보면 실수가 생겨나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이들의

논리에 대해 따지고 들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중족들은 어느 가게에서든 어느 길거리에서든

알아볼 수 있다. 헐렁한 옷차림으로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펼쳐져 있는 잡지면 재미삼아

아무거나 읽고, 집에서 가구를 다시 옮겨보기도 한고, 나무에서 잎사귀가 떨어지듯 이야기 속에 빠져든다.

나중족들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삶의 가능성에 대해 토론한다.

지금족들은 삶에 끝이 없으므로 상상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도 무수히

많이 가져보고, 결혼도 수없이 해 보고, 정치관도 끝없이 바꿔볼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이 법률가가 되고,

벽돌공이 되고, 작가가 되고, 회계사가 되고, 페인트 공이 되고, 약사가 되고, 농부가 될 것이다. 지금족들은

쉼없이 읽으면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새로운 언어를 공부한다. 삶의 무한함을 맛보려고 이들은 일찍

시작하며 느릿느릿 움직이는 법이 없다. 그러니 이들의 논리에 대해 의문을 품을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지금족들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이들은 카페주인이고 대학 교수며, 의사에다 간호원이고, 정치가에다가

자리에 앉을 때면늘 다리를 흔들거리는 사람들이다.이들은 한가지 삶에서 다른 삶으로 계속 옮겨다니면서

아무 것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재링거 분수의 팔각기둥에서 지금족 둘이 어쩌다 마주치면 이들은 각자가

거쳐온 삶을 비교해 보고, 정보를 주고받은 다음, 시계를 들여다 본다. 같은 곳에서 나중족 둘이 만나면

이들은 미래를 곰곰 생각하다가 분수의 물줄기로 눈길을돌린다.

지금족과 나중족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삶에 끝이 없다 보니 이들에게는 친척이 끝없이 많은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일도 없고, 증조 할머니 증조 할아버지, 왕고모 왕고모부, 왕왕고모

왕왕고모부, 그 위로 세대에 세대를 거슬러 끝도 없이 모두가 살아 있으면서 저마다 충고를 해준다. 아들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딸 역시 어머니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혼자 자립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자가 사업을 시작할 때면 그는 어머니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 할머니 증조 할아버지, 또 그

윗분들과 상의해서 그들의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 사업을 시작해도 그것은 새로운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 가운데에 누군가는 예전에 그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실로 모든 것이

이미 이룩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나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이 같은 세계에서는 차곡차곡 성공이 쌓여가지만

그에 따라 야심도 약간씩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딸이 어머니에게 도움말을 바랄 때면 그자리에서 도움을 들을 수가 없다. 어머니는 다시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어머니의 어머니는 그 어머니에게 그렇게 자꾸자꾸 끝없이 물어봐야 되기 때문이다. 딸이나

아들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바로 그것 때문에 이들은 어머니 아버지의 은밀한 충고를 바랄 수가

없다. 부모들이라고 해서 확실한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또 그 부모에게, 또 그 부모에게 자꾸자꾸

수백만 번이나 거슬러 올라간다.

무슨 행동이든 실행에 옮기기 전에 수백만 번이나 확인을 받아야되는 세계이고 보니 삶에는 확실하게

결정된 것이 없다. 다리는 강물 위로 반쯤 놓이다가 갑자기 끊긴다. 건물이 9층 높이로올라가도 지붕이 없다.

식품점에 들여놓은 생강과 소금, 콩, 쇠고기는 주인의 마음이 바뀔 때마다,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들을 때마다

다른 물건으로 바뀐다. 약혼은 결혼 바로 전날에 깨진다. 그리고 거리에서 길에서 사람들은 누가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고개를 돌려 등 뒤를 흘끔흘끔 바라본다.



이런 것들이 영원한 삶의대가다. 아무도 완전하지않다. 아무도 자유롭지 않다. 세월이 가면서 몇몇

사람들은 살아날 오직 한 가지 길은죽음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통해 과거의 무거운

짐을 벗는다는 것이다. 이들 몇몇 사람은 사랑하는 친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콘스탄체 호수로 뛰어들거나

몬테레마 산에서뛰어내려 끝없는 생명을 마감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 유한이 무한을 정복하고, 수백만 가을이가을 없음에 자리를 내주고, 수백만 눈송이가

눈송이 없음에 자리를 내주고, 수백만 충고가 충고 없음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 책 '아인슈타인의 꿈'중'1905년 6월 9일'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소개] ''아인슈타인의 꿈'' - 무상의 세계에서 꿈꾸는 유상의 세계  (6) 2006.09.21
1905년 5월 8일  (5) 2006.09.18
1905년 5월 11일  (1) 2006.09.15
1905년 5월 3일  (0) 2006.09.13
1905년 5월 14일  (2) 2006.08.23
Posted by 들 불
이전버튼 1 ··· 5 6 7 8 9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