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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9. 15. 00:37

마르크트 거리를 걸으면 놀랄만한 광경을 보게된다. 과일가게에는 버찌가 줄을 맞춰 늘어서 있고,

양품점에는 모자가 잘 정돈되어 있으며, 발코니에는 꽃들이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며 꽂혀있고,

우유가게의 돌바닥에는 우유얼룩이 전혀 없다. 정리되지 않은 채 버려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식당을 나서면 식탁은 전보다 더 깔끔하게 치워진다. 실바람이

거리를지날 때면 거리를 청소하며 흙과 먼지를 마을 한쪽으로 쓸어낸다. 물결이 일어 강변의 흙을

씻어 내릴 때면 강가는 다시 제 모습을 찾는다. 나뭇잎이 떨어질 때면 무리지어 날아가는 철새처럼

V자 모양으로 늘어선다. 구름이 만든 얼굴 모습은 그 모양 그대로 간직된다. 담뱃대에서 피어오른

연기는 맑은 공기를 더럽히지 않고 방 한쪽 구석으로 날아간다. 발코니에 입힌 칠은 비바람을 맞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빛깔이 더 선명해진다. 깨진 꽃병 조각은 천둥 소리에 벌떡 튀어올라 오밀조밀

제 자리에 정확하게 도로 붙는다. 지나가는 손수레에서 풍겨오는 계피향은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진해진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상하게 보일까? 여기 이 세계에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질서가 잡혀간다.

질서는 자연의 법칙이며, 만물에 깃든 경향이고, 우주 전체가 향해가고 있는 방향이다. 시간이

화살이라면 그 화살이 질서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다. 미래는 규칙이고 조직이며 통합이고 응집인

반면, 과거는 우연이고 혼란이며 분열이고 확산이다.

철학자들은 시간에 질서를 향해가는 경향이 없다면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는 과거와 구별되지 않을 것이고, 여러가지 사건의 결과는 제각기 수천수만의 소설에서 아무렇게나

뽑아낸 한 장면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역사는 저녁 무렵 나무 꼭대기에 천천히 엉겨 가는 안개처럼

희미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어수선한 집에 살면서 침대에 누워 자연의 힘이 창틀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신발장 속의 신을 가지런히 정돈해 주기를 기다린다. 일거리가 잡다하게 널려 있어도

사람들은 소풍을 가고, 그 사이에 시간 계획이 서고, 약속 시간이 정해지고, 통장이 정리된다.

립스틱과 빗과 편지를 핸드백 속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어도 알아서 저절로 정돈될 것이므로 마음

든든하다. 정원의 나무는 가지치기를 할 필요가 없고 잡초를 뽑을 일도 전혀 없다. 저녁에 마루바닥에

내던져 둔 옷이 아침에는 의자에 걸쳐있다. 잃어버린 양말이 다시 나타난다.

봄에 도시에 와보면 놀랄만한 광경을 또 하나 보게 된다. 봄철이 되면 사람들이 질서에 대해 염증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봄철이 되면 사람들은 집 안에 쓰레기를 마구 버린다. 먼지를 집 안으로

쓸어들이고, 의자를 부수고, 창을 깬다. 아르베르거 거리나 다른 어느 주택가를 가 보아도 봄철에는

유리 깨지는 소리, 고함소리, 으르릉대는 소리,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봄이면 사람들은 약속 시간도

정하지 않은 채 만나고, 수첩을 태우고, 시계를 내던져버리며,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신다. 이 같은 멋대로의

행동은 여름까지 계속된다.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질서로 돌아온다.

- 책 '아인슈타인의 꿈'중'1905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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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들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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