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뉴질랜드 Mt. Cook 등반기에 이어 후배 버섯동자의 Mt. Aspiring 등반기를 소개한다.

좋은 환경과 좋은 여건의 좋은 산행이다.

한국의 산은 여러모로 신음하고 있다.그렇다해도 산은 현재 말도 안되는 개발 중인강보다는 훨씬더 나은 형편이다.

그걸 위에서 바라보는 산의 느낌은 어떠할까.

뉴질랜드의 청정한 산보다 이 나라의있는 그대로의산하를 꿈꿔본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Mt. Aspiring 등반기

Mt. Aspiring 은 3000미터가 넘는 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뉴질랜드 남 섬의Southern Alps산맥 중, Aspiring국립공원에 위치해 있는 3033미터의 산으로, 뉴질랜드 최고봉인 Mt. Cook (3754m)과 더불어 산악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 중에 하나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세 개의 칼날 같은 능선이 연결 되어 있는데, 가장 일반적으로 오르는 곳은 북서 능이다. 독립적으로 솟아 있는 봉의 모양이 유럽에 있는 마터호른(Matterhorn)을 닮았다고 하여 남반구의 마터호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뉴질랜드 한인 산악회에서 등반 의욕이 있는 네 분과 함께 지난 1월초에 일주일간 등반을 하고 왔다.

1월7일 금요일 맑음 - 산으로 가는 날

또 다시 흰 산으로 향하는 날이다. 늘 큰 산으로 갈 때는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말리는 아내이지만, 막상 떠 날 때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주고, 음식을 장만해 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그 아내의 뒷모습에서 젊은 시절 히말라야로 향하는 나를 챙겨주시던 내 어머니의 그림자를 본다. 아침5시45분 우리를 공항까지 픽업해 주시는 최성아님 남편의 심정도 나의 아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다시 다진다. 공항에서 김영환님이 합류하고, 아침7시10분, 정시에 비행기는 오클랜드 공항을 이륙한다.
Mt. Aspiring! 작년 Mt. Cook등반에서 이루지 못한 정상 등정의 꿈을 이번에는 이룰 수 있을는지! 여전히 부족함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출발을 하니 이미 험난한 봉우리를 반 이상 넘어온 느낌이다. 처음 팀 구성부터 어려움을 겪던 중 현성의 휴가 일정에 맞추어 일정을 예정보다 일주일 당기고, 등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겨우 두 번의 준비 모임만으로 운행 연습을 마치고 출발해야 했다.
아침 9시15분 Queenstown 도착, 미리 예약해둔 Shuttle Bus로 Wanaka로 이동한다. Queenstown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큰 호수를 둘러 싸고 있는 웅장한 산들이 그 자체로도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또 이곳은 번지점프와 제트보트의 고향(최초로 상업적으로 이용)이고, 산악자전거, 스키, 페러글라이딩, 레프팅 등 다양한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레저의 천국이다. Wanaka로 가는 도중 버스기사의 말에 의하면 지난 며칠간 엄청나게 많은 비가 내렸다고 한다. 3인치 정도만 비가 더 왔었어도 Wanaka 호수가 범람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산 아래쪽은 더 없이 맑고 쾌청한 날씨인데, Mt. Aspiring 국립공원 쪽은 잿빛 구름이 덮여 있어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든다. 10시 15분 Wanaka에 도착, 필요한 식료품과 연료를 구입하고, DOC(Department of Conservation)오피스에 들러 산장 이용권을 구입하고, 기상정보를 물어보니, 오늘 바람이 심해 헬기가 이륙하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한다. 담당자가 헬기회사와 통화해 본 결과 현재로서는 이륙이 불가능하며, 오후 4시경 최종확인을 해 보라고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아주 난감하였지만, 방법은 일단 기다려보는 수 밖에…… 헬기가 안되면 1박2일간 걸어서 들어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헬기를 타고 들어간다는 계획에 맞춰 식량과 장비를 여유 있게 준비하였기에 그 많은 짐을 지고 걸어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기에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다.
지난 며칠간 내린 빗물이 가득 차, 파도가 출렁이는 Wanaka호숫가에서 바람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며, 초조히 기다리기를 3-4시간, 이륙이 가능하다는 전화를 받는 순간 뛸 듯이 기뻤다. 다시 Shuttle Bus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 헬기장에 도착했다. 말이 헬기장이지 목장 한쪽 구성에 간이건물이 1개 달랑 있고, 조그마한 헬기착륙장이 있는 것이 전부였다. 오후 4시 45분 헬기이륙! 헬기를 처음 타보는 이종윤님과 최성아님은 아직도 불고 있는 바람에 출렁이는 헬기의 움직임에 약간은 긴장하면서도 신기한 듯, 등반 후 우리가 걸어서 내려올 Matukituki Valley를 내려다 본다. 5시 Bevan Cole 벼랑 끝 헬기가 겨우 내릴만한 작은 공간에 착륙, 신속히 짐을 내리고, 헬기가 떠나간 다음, 우리만이 고립무원의 산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려는 듯이 빙하에서 불어오는 잿빛 가스구름과 차가운 바람이 高山에 온 것을 실감나게 한다.



크레바스가 있는 Bonar 빙하를 건너야 하기에 하네스를 차고, 아이젠을 신고 앞 뒤로 배낭을 멘 체 출발한다. 빙하 위의 눈들은 비교적 단단하게 얼어 있어 걷기에 좋았다. 하지만, 중간 일부분에는 물이 흐르는 곳이 있었는데, 앞서가던 나는 몇 번이나 살얼음이 살짝 덮인 웅덩이에 발이 빠져 다리와 발이 젖었다. 다행이 기온은 낮지 않아 젖은 채 걸을만했다. 이종윤님도 발목이 얼음 구덩이에 빠졌는데, 눈과 물, 얼음이 섞인 웅덩이라 늪처럼 발이 빠지지 않아 한참 애를 먹었다.





보통 헬기 착륙지점에서 Colin Todd Hut까지는 1시간 반정도 걸리는데, 우리 팀은 짐이 많다 보니, 약 2시간만인 저녁7시경 도착했다. 예상은 했던 일이지만, 12명이 정원인 작은 산장은 이미 만원이라 비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비박을 준비하며 산장 바깥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데, Guider 몇 명이 텐트도 빌려주고, 매트리스도 빌려준다. 다행히 우리 팀 남자3명은 2인용텐트에서 잘 수 있게 되었고, 여자2명은 산장 바닥에서 매트1장에 같이 누워 잘 수 있게 되었다. 산 사람의 후한 인심은 한국이나 여기나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산장에 설치되어 있는 무전기로 전해 오는 일기예보에 의하면 내일부터 이틀간은 맑은 날씨가 예상된다고 하여 내일 새벽 정상 등정을 시도할 계획이다. 산장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내일 북서 능을 따라서 정상 등정을 시도할 예정이라고 한다. 밤 10시경 좁은 텐트에 잠자리를 잡고 내일의 성공을 위해 김형환님과 위스키 한잔을 마시고 잠자리에 든다. 현성은 오기 전날 영양 보충을 위해 먹은 햄 때문인지 배탈이 나서 오늘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누웠고, 나는 오기 이틀 전 산악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갈비뼈에 금이 가 있는 열악한 상황이지만, 예정된 Mt. Aspiring을 향한 발걸음은 멈추게 할 수가 없었다.





1월8일 토요일 맑음 - 정상 등정

텐트를 날려 버릴 듯이 밤새 불어대는 바람소리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새벽3시가 되었다. 새벽이 되면서 바람이 조금 잦아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거칠게 불고, 아직 바깥은 칠흑같이 어둡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초행길이고, 시작부터 암벽구간인지라, 이런 어둠 속에 남보다 먼저 출발하면 길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 새벽 4시 넘어 출발하기로 하고 누워있는데, 산장에서 잔 최성아님이 내려왔다. 다른 팀들이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채비를 하여 산장으로 가 보니, 모두들 준비를 하느라 좁은 산장 안이 시장 바닥 같다. 우리도 좁은 틈에서 물을 끓여 차와 최성아님이 준비 해온 떡 한 덩이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김형환님의 배웅을 받으며 5시 40분 다른 팀들보다 조금 늦게 산장을 나섰다.
다른 팀들의 랜턴 불빛을 따라 1시간 정도 갔을 쯤, 이종윤님이 뒤로 처지기 시작한다. 아쉽지만 냉정하게 결정을 지어야 할 순간이기에 하산하시라고 하고 계속 전진했다. 더 전진하다가는 혼자 돌려 보낼 수도 없게 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조금 지체하는 사이 앞 팀의 불빛을 놓쳐, 계속 암능을 오르다 보니, 하강을 해야만 갈 수 있는 절벽이 나왔다. 암능 초입에서 왼쪽 눈 사면으로 빠졌어야 하는데, 잘못 온 것이다. 자일을 내리고 하강을 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그 사이 날이 훤하게 밝아 왔다.



다시 눈 사면이 나오고, 멀리 두 번째 암능이 보인다. 두 번째 암능은 이번 산행의 최고 난코스로 훨씬 경사도 급하고 가파른 곳이다. 앞에 간 팀들이 암벽 중턱에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아직 장비 사용이 익숙하지 않고 등반 경험이 별로 없는 두 사람을 데리고 가려면 암벽구간에서는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고, 지체된 시간을 만회하기에는 암능보다는 왼쪽 눈 사면을 따라 오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 따라, 크레바스를 피해 가면서 왼쪽 눈 사면을 따라 올랐다. 사면의 평균 경사도는 50-70도 정도, 지난 몇 개월간 매주 같이 암벽등반을 해온 최성아님이 빙벽에서도 자신감 있게 올라가시는 것을 보고 속도를 내기 위해 나와 교대로 선등을 서면서 갔다. 11시경 우측 암능으로 연결되는 지점에 도달했지만, 눈 사면으로 계속 올라가도 정상으로 이어질 것 같아 설벽 상단까지 올라갔으나, 위쪽 암벽과 연결되는 곳은 모두 눈 녹은 물이 흐르고, 얼음이 아주 얇게 얼은 살얼음 상태라 도저히 넘어 설 수가 없었다. 시간은 이미 정오가 넘어서고 있고, 정상으로 연결된 길은 아직 찾지 못한 상태이니, 이번에도 정상에 서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시 후퇴를 하여 지나쳐 올라온 우측 암능으로 연결되는 암벽구간으로 가서 암벽등반으로 2피치(슬링 2개 걸려 있음) 올라 능선에 붙을 수 있었다. (Pm 1:40) 능선에 올라서니 다행이 정상으로 연결된 길이 훤하게 보였다. 어림잡아 2시간 정도면 정상에 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산시간까지 계산하면 그리 여유로운 시간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모두 컨디션도 양호하고,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거리인 것 같아, 정상을 향해 다시 올라 갔다. 멀리 아래 쪽으로는 하산을 하고 있는 다른 팀들의 모습도 종종 보였다.

정상으로 연결되는 마지막 눈 사면 바로 밑에 도달했을 쯤 여자 가이드팀 일행 2명이 하산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팀도 도중에 길을 잃어 정상 등정이 늦어졌다고 한다. 정상으로 이어진 눈 사면은 경사도 더 급하고, 사방이 수 백 미터 낭떠러지인지라, 안전을 위해 서로 자일로 연결하여 올랐다. 오후 3시40분, 드디어 정상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야호~.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인지라, 360도 파노라마 전망이 시원하게 시야에 들어와 정말 세상의 꼭지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20분 정도 정상에 있으면서 기념촬영도 하고, 경치를 보며 정상등정의 기분을 만끽하다가 하산을 시작했다.







오후 3시 40분 Mt. Aspiring 정상 등정







등정보다는 하산 시 안전이 더 중요하기에 신중을 기하며 내려왔다. 약 한 달 전에도 한 등반객이 정상 부근에서 하산 도중 몇 백 미터를 추락, 빙하에 있는 크레바스에 빠져서 사망했다고 한다. 하산은 올랐던 코스와는 다르게 다른 팀들이 내려간 암능을 따라 내려가다가 자일 하강을 3번 정도 한 다음, 일명 캥거루라고 부르는 암벽아래 쪽에서 좌측 설 사면인 Ramp를 따라 하산했다. 등반 도중 암벽 구간에서는 무거운 등산화를 벗고 미리 준비해간 가벼운 신발로 갈아 신고 등반을 하였더니 훨씬 수월했다. 눈 사면은 오후가 되면서 많이 녹아 발목 깊이까지 빠지는 길이었지만, 가파른 내리막길에서는 오히려 걷기가 편했다. 멀리 산장이 빤히 보이는 거리지만 1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도착했다. (저녁 8시40분/총16시간 소요)

오늘 등반 팀 중에서 가장 늦게 내려와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면서 하루 종일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린 김형환님이 가장 먼저 반갑게 맞아주었고, 이종윤님도 우리를 위해 산장에 있는 백인들을 무시한 채 구수한 냄새가 물씬 나는 된장국을 맛있게 끓여 놓고 기다려주셨다. 하루 종일 굶다시피 한 우리 3명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된장국을 맛있게 한 그릇 가득히 먹고, 숭늉까지 먹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오늘 저녁은 다행히 우리 팀 모두 산장 안에 잠자리도 마련되어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물론 다른 팀 몇 명은 오늘 밤도 산장 바깥에서 비박을 하고 있다.




오늘 하루 정상을 다녀온 팀은 모두 6-7팀, 대부분 전문 등반 가이드와 함께 왔는데, 그 중에서 가장 빨리 정상을 다녀온 사람은 혼자서 온 젊은 친구인데, 몇 일전에 이곳 산장에 왔다가 날씨가 계속 안 좋아서 Aspiring Hut에 내려가 있다가 다시 올라와서 정상 등정을 했는데, 약 6시간 만에 다녀왔다. 그 친구는 아마도 이전에 정상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 루트를 잘 알고 있고, 체력도 뛰어난 사람이기에 가능했으리라. 그 다음 빨리 다녀온 프랑스 커플은 9시간 반, 그리고 나머지는 전문 가이드와 같이 오른 팀들인데 모두 10시간을 넘겼다. 우리 팀도 루트를 정확히 따라 갔더라면 아마도 3시간 이상은 단축할 수 있었으리라 예상된다. 초행인 곳을 가이드 없이, 등반 경험이 별로 없는 두 사람과 함께 16시간 만에 다녀온 것만으로도 기대 이상의 훌륭한 성과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