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마낭에 도착한 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고소적응을 하기 위하여 대부분 하루나 이틀을 쉬어가는 곳이라,이틀정도 머물면서 밀라레빠의 거처와 틸리초 호수를 보고 싶었다. 게다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 때문에 꼭 가고 싶은 곳이지만, 주저하게 만든다.
마음 한구석이 계속 무겁다. 몇일 전의 꿈 때문이다. 저녁 먹고 혼자 있게 되자, 편하지 않은 감정의 파동이 밀려온다.
결정을 내려야한다. 랄을 불러서 상의하였다. 에베레스트 지역과 티벳을 다녀온지라 고소적응은 이미 된 터이니 내일 다음 목적지로 떠나자고 하였다. 랄은 흔쾌히 응한다.
몸은 히말라야의 깊은 산자락 속에 있지만, 마음과 생각은 그 경계가 없다. 마음은 수시로, 힘들었던 고통의 순간을 되새김질 하기도 하고, 왁자지껄한 술자리, 편한 나의 공간과 가족등을 떠올린다. 또한 가끔,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어서 내려가라고 꼬시기도 한다. 항상 그렇듯이 밝음의 다른 쪽에는 어두움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삶은 모자이크와 같다. 두려움과 행복감이 교차하고, 슬픔과 기쁨이 공존한다.
마낭에서 최고점인 쏘롱라(Tholung La, 5416m)까지는 이틀거리이다. 아주 빨리 가면 하루거리이긴 하지만, 고소적응을 해야하므로 고개 넘기전에 최소 이틀이상을 자도록 권유하고 있다. 보통 많은 트레커들이 아크카르카(4018m)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쏘롱라 바로 밑의 쏘롱페다이(Tholung Phedi, 4550m)에서 하루를 더 보낸 후 고개를 넘는다.
여러모로 아쉽긴 하지만 아침이 밝았고, 다음 목적지인야크카르카를 향하여 떠나야 한다.
날은 아주 청명하고, 약간 싸늘하게 춥다.
마낭을 출발하여 마을 밖으로 나오니 강가푸르나(Gangapurna, 7454m)의 위용이 보이고, 강가푸르나 빙하와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로 이루어진 빙하호가 보인다. 상대적으로 낮은 3500미터에 펼쳐진 빙하호가 이채롭다.
< 강가푸르나봉과 강가푸르나 빙하, 빙하호 >
고도상 계절이 이미 겨울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가는 길은 부석부석한 흙먼지가 날리는 길이다. 아래 세상은 모두 뿌연 흙빛이다. 지나온 마낭도 역시 뿌연 흙빛이다. 흙빛의 대지를 밝은 빛 한줄기가 지렁이 처럼 지나간다. 마르샹디강의 상류인 것이다. 흙빛 일색인 마낭의 지평선 위로는 백색으로 빛나는 설산들이 있다.
안나푸르나 2봉(7937m)과 4봉(7525m), 3봉(7555m), 강가푸르나(7454m)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 마낭, 마르샹디 강, 안나푸르나 2봉 >
< 안나푸르나 3봉과 강가푸르나봉 >
좀 흐리기는 하지만 안나푸르나 2,3,4봉을 동시에 봐보자.
< 안나푸르나 2봉, 4봉, 3봉 및강가푸르나 빙하호와 마르샹디 강 >
마낭에서 약 30분 정도 걸었을까 틸리초와 쏘롱라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갈림길은 하나의 능선을 사이에 둔 두개의 계곡이다. 산이 물을 넘지 못하듯이 두개의 계곡은 산맥을 자르고 두갈래 길을 만든다. 왼쪽은 틸리초 호수로 가는 계곡길인 캉샤르 지류(Khangsar Khola)이며 우측의 계곡은 쏘롱라로 향하는 자르상 지류(Jharsang Khola)이다. 결국 캉샤르 지류와 자르상 지류가 합쳐져 그동안 계속 봐온 마르샹디 강이 되는 것이다.
< 틸리초와 쏘롱라가는 길이갈라지는 계곡- 멀리 틸리초 봉(7135m)이 보인다 >
< 틸리초, 대장벽과 틸리초 호수,틸리초와 쏘롱라가는 갈림길 - 지도 >
아쉽지만 틸리초 호수에 대한 연정만 품은채 가는 길을 재촉한다.
1시간 정도 걸었을까, 랏지가 나타난다. 사과를 사서 까먹으면서 랏지뒤로 펼쳐진 안나푸르나 연봉을 만끽한다.
나중에 오면 여기서 자기로 작정하면서...
< 랏지뒤로 펼쳐진 안나푸르나 2봉, 4봉, 3봉, 강가푸르나 >
( * 파노라마로 찍지 않은 사진을 붙이다 보니 랏지 건물과 창문이왜곡되게 보인다. )
다시 출발하여 걷는 길은 하염없이 펼쳐진 부석부석한 흙길이다. 뒤로는 안나푸르나 연봉들이 계곡과 함께 펼쳐져 있고,앞길에는 쏘롱라근처의 봉우리들이 보인다.
< 걸어온 길 - 안나 2,4,3봉과 자르상 지류가 보인다>
< 걸어 갈 길 - 쏘롱라 주변의 야카와캉 봉(Yakawakang, 6482m)등이 보인다 >
황량한 길을 한참을 걸으니 조그만 티하우스가 나타난다. 티하우스는 아주 조그맣고 돌을 쌓아서 만들었는데 주변의 경치와 어우러져 아주 멋있다.
멀리 아래 계곡에서는 힘찬 물소리가 들리고 강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계곡 우측에 있는 산굽이 못 미쳐 보이는 건물있는 곳이 바로 오늘 머물 야크카르카인 것이다.
길은 가까와 보이지만 막상 걸어보면 10분거리 같이 보이는 곳이 1시간 정도 걸리기 일쑤다.
5분 같은 거리를 30여분이나 걸려 야크카르카에 도착하였다.
야크카르카는 "야크의 방목장"이라는 뜻이다. 뜻에 맞게 군데군데 야크가 보이기도 했다.
이 황무지 같은 땅에도 적지 않은 랏지가 새롭게 건설중이다. 설산을 배경으로 하여 좀 더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을려고 애를 쓴다. 식당이나 숙소에서 설산을 바로 볼 수 있도록. 그래야 트레커들이 다른 곳보다 먼저 찾게되니까...
마낭에서 멀지 않은길이라 일찍 도착하여 랏지에 여장을 풀고 늦은 점심으로 계란 볶음밥을 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닌다.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의 웅장한 모습을 감상하며 해가 저무는 하늘을 본다.이틀전 피상에서는 설산과 구름이 조화를 부리고, 어제 마낭에서는 봉우리를 배경으로 빛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더니, 오늘은 산과 겹쳐진 하늘을 바탕으로 구름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해가 저물어 빛들이 눈에서 사라질때 까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렇듯 오랫동안 하늘만 바라보는게 얼마만이던가.
멀리서 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두워진 길가에 있는 조그만 움막 안에선 랄과 몇 명의 포터들이 럭시(네팔술)를 마시고 있다. 싸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밖에 비하여 장작불을 때는 안은 참으로 아늑하고포근하다. 호롱불에 의지하여 도란도란 얘기하는 모습에 묻혀 어느덧 같이 취해간다.
그들은 아주 행복해 보였고, 나도 같이 행복해졌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라마크리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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