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구름 사이의 투명한 허공에서 비치는 햇살과 같으니 지금 그런 햇살이 있음을 알고 현명하게 사용하라.
세상 사람들이여... "- 파담파 상게
마낭(Manang, 3540m)은 몇일 쉬어 가는 곳이다.
이곳부터 고도가 3500미터를 넘어서기 때문에 고소증을 예방하기 위하여 하루 이상을 쉬어 갈 것을 권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시 남체(Namche, 3450m)가 교통의 요지이며, 트레커들의 쉼터이듯이 마낭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고도가 비슷하여 트레커들이 쉬어 갈 뿐 남체와 마낭은 여러가지 면에서 다르다.
깎아 지른 협곡위에 세워진 콜롯세움 반쪽 모양의 남체에 비하여, 마낭은 폭 10여미터로 좁아진마르샹디 계곡의 상류 옆모래먼지가 흩날리는 황무지에 위치해있다. 남체에서는 설산을 보기가 힘들었지만, 마낭은 7000미터 급의 설산에 포위되듯 둘러싸여 있다. 또한 바로 뒤에는 강가푸르나(Gangapurna)빙하의 마지막 자락과 빙하호가 자리잡고 있다.
에베레스트가 있는 쿰부지역과 안나푸르나 지역은 복잡한 산악지형 만큼 독특한 자기 만의 색이 있는 것이다.
트레킹 최고점인 쏘롱라(Thorung La,5416m)는 이제 이틀 거리로 다가와 있다.
마낭에서 고소적응을 하기위해 머물면서 가보는 곳이 몇군데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티벳의 위대한 스승"인 밀라레빠(Milarepa)가 머물었던 동굴이다. 또한 2일 이상의 시간을 내어 틸리초 호수(TilichoTal)를 다녀오는 것도 권하고 있다.( 단 틸리초 호수를 가는 길은 위험구간이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우선 틸리초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자.
1950년 다울라기리와 안나푸르나를 등정하기 위하여 찾아나선 프랑스 원정대(대장 : 모리스 에르족)는 다울라기리를 수차례에 걸쳐 정찰을 한다. ( 프랑스 원정대 얘기는 블로그 글 이별, 만남, 출발 : 11월 7일 포카라(Pokhara, 884M) - 베시사하르(Besisahar, 820m) 참조 )
히말라야 지형의 특성상 북쪽에서의 접근이 완만하고 쉽다고 생각한 원정대는 다울라기리를 북쪽에서 공략하기로결정하고 북릉과 북쪽계곡을 몇차례에 걸쳐 탐사한다. 지도의 표기가 잘못되어 원하는 계곡은 찾을 수 없고, 높은 능선만을 경험한 원정대는 북쪽에서의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여겨 다울라기리의 남동릉과 동릉등의 루트를 찾기 위하여 보름정도를 허비한다. 원정대는 피라밋처럼 솟아있는 다울라기리에 압도된 듯하다.
상대적으로 10여개의 산군으로 이루어진 안나푸르나가 쉬워보인 듯 했다. 마침 묵티나트를 방문하는 라마승을 만나 점을 봐달라고 한 원정대에게 라마승은 잠시의 명상뒤 "다울라기리는 당신들과 인연이 없다"고 얘기하며 묵티나트 방향을 가르키며 그 곳에서 찾아보라고 한다.
결국 다울라기리를 포기하고 정찰대를 나누어서 안나푸르나답사에 나선다.
그러나 그들이 오르기로 결정한 안나푸르나 1봉은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원정대의 일부는 칼리간다키 강의 상류쪽인 좀솜에서 안나푸르나의 북면을 찾아서 정찰을 한다. 그들은 현지인을 가이드로 삼아 틸리초 고개( 현재의 메소칸토 고개(Mesokantu La) )를 어렵게 넘는다. 틸리초 고개를 넘으면 바로 마낭(Manang)으로 가는 깊은 계곡이며, 그 사이에 안나푸르나 1봉의 북면이 있고 그곳을 통하여 안나푸르나 1봉을 등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고개를 넘자마자 그들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안나푸르나 1봉의 모습 대신 해발 5000미터에 펼쳐진 "눈과 얼음의 찬란한 세계"를 보았다. 바로 꽁꽁 얼어붙은 틸리초 호수(4920m)와 호수뒤에 엄청나게 솟아 있는 10킬로에 걸쳐진 대장벽을 본 것이다. 원정대장인 모리스 에르족은 이 장벽의 이름을 불어로La Grande Barriere(Grand Barrier )로 명명하였다.
< 대장벽(Grand Barrier) 파노라마 >
(사진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nam/26332352/in/set-598598/)
이 대장벽은 닐기리(Nilgiri) 북능선에서 시작하여 틸리초피크(Tilicho Peak, 7135m)를 거쳐 캉샤르캉(Khangsar Kang, 7485m)까지 이어져 바위와 얼음과 눈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벽을 형성하고 있다.
< 대장벽(Grand Barrier) >
(사진출처 : http://www.nepal-dia.de/int__England/EV_Annapurna/EB_Tilicho/eb_tilicho.html)
<대장벽의 남동쪽 끝인 캉샤르캉(Khangsar Kang, 7485m), Roc Noir 라고도 함 >
(사진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nam/sets/598598/)
안나푸르나 1봉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정찰대는 호수로 내려가서 얼음이 꽁꽁 언 호수를 서로의 몸을 묶은후 횡단한다. 틸리초 호수는 4Km의 길이에 너비가 1Km에 달하는 아주 거대한 호수이다. 지도를 얼핏 보아도 포카라에 있는 페와호수(Phewa Tal)와 비슷한 크기다.
< 틸리초 호수, 호수 좌측이 대장벽>
(사진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nam/sets/598598/)
(기타 틸리초에 대해서는 번역된 한글 사이트 참조 : http://trek.pe.kr/tilicho_Andrees/tilicho_Andrees.htm)
호수를 건넌 정찰대는 다시 패를 나누어 한팀은 대장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등반하기로 하고, 대장인 모리스 에르족은 마낭을 찾아 나선다.
마낭까지 가는 길은 캉샤르계곡을 따라가는 아주 급경사의 길이었고, 고생끝에 마낭에 도착한다. 마낭에서 현지인에게 안나푸르나 1봉의 위치를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안나푸르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마낭에서 음식을아주 조금얻은 후 모리스 에르족은 다시 길을 거꾸로 올라 틸리초 호수로 향한다. 초코렛 하나로 때우면서, 좁은 계곡을 건너다 빠져 젖은 채로 하루밤을 비박을 한 후 죽음 문턱에서 극적으로틸리초 호수의 정찰대에 다시 합류한다.
한편 대장벽 너머를 정찰한 다른 팀은구름때문에 아무것도 볼수가 없었고, 다만 대장벽 너머에 안나푸르나 1봉이 있다고 강한 추측만을 내린 후, 다시 틸리초호수를 건너 본대가 있는 투쿠체로 원위치한다.
이리하여 그 유명한 틸리초호수와 대장벽(그랜드 배리어)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틸리초 가는 길과 정반대편 길에 밀라레빠 동굴이 있다. 피상에서 마낭으로 오는 길 중간인 브라가(Braga)의 계곡 건너편에 위치한다.
밀라레빠의 이야기도 간략히 해보자.
< 밀라레빠 탱화(Thangka) >
(사진출처 : hthttp://www2.bremen.de/info/nepal/Gallery-3/Milarepa/10-1/mila1-0.htm)
티베트의 위대한 성자로 알려진 밀라레빠(1052~1135)는 네팔에서 가까운 지역인 궁탕의 깡가짜 마을에서 태어났다. 다른 성자들이 여러 생에 걸쳐 윤회하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반면, 그는 단 한생을 통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의 어린시절 삶은 집안의 몰락등으로 아주 어려웠으며 나중에 깨달음을 얻기까지 극한의 수행을 하였다.
밀라레빠는 부유한 장사꾼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홉 살에 아버지가 죽으면서 당숙과 당고모에게 아들이 장성할 때까지 재산을 관리할 것을 유언장에 남겼다. 그러나 당숙과 당고모는 재산을 가로채려는 음모를 세운다. 결국밀라레빠와 어머니, 누이동생은 가난한 생활을 하며 더부살이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밀라레빠가 장성한 후 당숙에게 재산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당숙과 당고모는 오히려 모든 재산이 원래 자기들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밀라레빠와 그의 어머니를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취급하며 내쫓았다.
어머니는 복수를 결심하고 밀라레빠에게 흑마술을 배워 원수를 갚으라고 한 이후 집을 떠난 밀라레빠는 흑마술을 배우게 된다. 당숙의 큰아들 결혼식 날 밀라레빠는 흑마술을 전개하여 하객들 몇 십명을 몰살시켜 죽인다. 당숙과 당고모는 집밖에 있어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몇번에 걸친 복수 이후 밀라레빠는 깊이 뉘우치면서 참 진리를 찾아서 떠돌다가 위대한 성자 마르빠를 만나게 된다.
마르빠는 밀라레빠의 근기를 보고 참된 제자임을 직감하였으나 밀라레빠가 흑마술로 저지른 악업을 씻어주기 위하여 탑을 쌓았다 부수기를 몇년동안 예닐곱차례에 걸쳐 시키며 시험한다.
그는 갖은 고생을 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스승의 가르침을 얻지 못하자 떠나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마지막 순간이 되서야 스승 마르빠가 가르침을 주어 법을 이어 받는다. 이후 수년에 걸쳐 마르빠의 지도하에 수행을시작한다. 몇년이 지난 후 집을 다녀오기로 한후 고향에 다시오니 예전의 집은 폐허가 되어 있고,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누이동생은 거지가 되어 어디에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 이후 밀라레빠는동굴에서 처절한 수행을 한다. 10여년 동안 먹을 것이 없어 쐐기풀을 끓여 먹고 옷이 없어 벌거벗은 채 수행하였다. 쐐기풀만 먹었기 때문에 몸의 색깔이 초록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런 한계를 뛰어넘는 혹독한 수행끝에 밀라레빠는 큰 깨달음을 얻게된다. 밀라레빠는 일체의 세속적 욕망과 명예까지 모두 버리고 오로지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에 생애를 보냄으로써 수행자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리고 온갖 속박에서 벗어나 진리와 하나되기 위한 그의 구도 과정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극한 고행이다. 극한수행을 포기하라는 누이동생의 말에 밀라레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세속적 욕망은 최종적으로 아쉬움만을 가져온다. 얻은 것은 사라지고, 쌓은 것은 무너지며, 태어난 것은 죽는다.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은 얻는 것과 쌓는 것, 만나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올바른 스승의 지시에 따라 (시작도 끝도 없는)진리를 깨닫고자 노력한다. 이것 하나만이 최선의 행법이다."
밀라레빠는 구도에 관한 수많은 가르침을 남겼으며 신비로운 깨달음의 세계를 아름다운 노랫말의 형태로 남겼다. 그를 엮은 책이 "밀라레빠의 십만송"이다.
원래 자연이라는 것이 그냥 스스로 있어온 존재인데, 어느날 인간이 개입이 되어 오른다느니 건넌다느니 하는 개념을 만든다. 처음 오른 에베레스트가 그랬고, 처음 건넌대서양이 그랬을 것이다.
안나푸르나를 찾아나서 인류최초로 8000미터 넘는 안나푸르나의 정상에 선 프랑스 원정대는 인간의 자취라곤 조금도 없던 길을 개척해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오른 것이다. 아울러 지금도 이루어지는 새로운 발견과 창조와 창작행위 역시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없는 길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찾아 자기자신을 넘는 수행의 길이야 말로 아무도 가지 않는"길 없는 길"이라고 하지 않는가?
프랑스 원정대는 안나푸르나를 성공적으로 등정한 후에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바위와 빙산으로 반짝이는 산꼭대기의 황홀경은 하나의 촉매에 불과하다. 그 세계는 무한을 암시하지만 사실은 무한이 아니다. 그 높이는 자신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척도에 비례할 뿐이다." - 책 '최초의 8000미터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를 찾아 틸리초를 넘은 프랑스 원정대와 진리를 찾아 자신을 넘은 밀라레빠의 자취를 동시에 느낄 수 있기에 마낭이 더욱 특별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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