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은 절이 깃들어 있는 터이다. 골짜기 마다의 사연에는 늘 그 끝에 해당하는 절과 절터가 있다. "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라는 제목의 책도 있지 않는가. 좋은 절은 좋은 산 속에 있을 때 명찰이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결국 좋은 산세가 좋은 절을 만드는거다.
남도(南道)로의 외출은 봄을 기다리는 객들에게는 가슴벅찬 일이다. 해남,강진 등에 자리한 햇볕 따스한 대지와 유서깊은 터전과 낯익은 듯 낯선 풍경은 객을 설레게한다. 역사의 흔적들은 그 앞에 선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작용이 있다.
너무나 익숙해서 있는지도 몰랐던 곳, 북한산에도 그런 곳이 있다. 따져 보면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의 절들이 북한산 자락에도 몇몇이 있다. 승가사의 마애불 앞, 문수사의 동굴, 금선사의 앞마당, 진관사의 대웅전, 삼천사의 마애불 등이묘한 평온감을 준다. 북한산에만 해도 자칭 유서깊은(?) 사찰이 30여개 이상 존재하고, 예전에 건재하다 지금은 사라져 절터만 남은 곳도 10여개가 있다.
사찰이 있다 사라진 터를 폐사지라고 한다. 북한산을 수백번 다녔어도 폐사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우연히 옛 삼천사의 절터를 보게되었다. (현재 있는 삼천사(三千寺)는 옛삼천사(三川寺)와는 이름도 다르고 위치도 다르다.)
이끌리듯 가게 된 용출봉과 용혈봉밑에 자리잡은 옛 삼천사 절터. 이 잘생긴 봉우리들은 절터에서 보면 완연히 다르다. 또한 이 봉우리들이 절터를 색다르게 만들기도 한다. 절터를 새롭게 만나는 느낌은 의식보다 무의식에 가깝다.
가끔 꿈이 현실보다 더 생생하고, 무의식이 의식을 압도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오를 수 없는 암릉은 의식의 상상력을 자극하다 끝내 무의식으로 침잠된다. 어느 길이란 걸 가봤다는 것은 그냥 지나쳐 갔기에 가봤다고 하는 것이지, 그 길에서 내가 모든 것을 느끼고 향유해 본 것은 아니지 않은가? 수많은 길이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철마다의 향취가 있는데다, 똑같은 계절이라도 시간대에 따라 다르고, 비오면 비오는 대로, 눈오면 눈오는대로 매번 달라지는 그 모습을 나는 단지 의식적으로 안다하고 경험해 봤다고 할 뿐, 진실한 경계는 우리의 의식적 관념과는 거리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경험하고자 하는 것은 의식적인 것의 심연에 존재하는 무의식적 경험일지도 모른다. 절터, 그것도 사라진지 몇 백년 되는 절의 터를 답사한다는 것은 깊은 무의식의 표면을 건드리는 것이리라.
삼천사 옛절터는 남도의 느낌이 난다. 겨울의 끝, 아직 이른 초봄의 싸늘함조차 사라지게 하는 적막한 무언가가 있다.
머나먼 남도의 향기처럼 몇 백년 전의 시간을 단숨에 거슬러 오르게 하는 초월감. 이 서늘한 공적(空寂) 속에서 남도의 봄기운과 향기를 맡는다.
최소한 수 백년은 되었음직한 석축 위 절터에는 아무 것도 없다. 상수리나무와 참나무와 잡목 만이 잔바람 속에 흔들리고 있다. 원래 절터의 기단부인 석축을 향하는 길은 조그만 오솔길이다. 가는 길엔 기와조각과 항아리조각이 밟힌다. 지금은 철수한 군부대의 시멘트 구조물 같은 흔적도 곳곳에 보인다. 이런 인공물로 인해 애시당초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절터에는 거대한 무형의 기운만이 있다. 그나마 남은 절의 흔적이란 바닥에 깔린 기와조각이 전부인 곳.
'없음'이란 존재는 참 묘하게 사람을 부추긴다. '없음'을 '존재'라 하기엔 어폐가 있겠지만, 사실 없기 때문에 찾아 헤매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은 욕망의 또다른 모습일 수도, 없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이겨낼 대리만족일 수도있겠다.
남도 사찰의 번듯한 모습이 삼천사 옛절터에 남아 있을 수 없다. 이곳은 개수되고 개축된, 지금도 진행 중인 끊임없이 바뀌어가는 현존하는 사찰이 아니다. 보물과 국보의 탈을 쓴 현대화 된 관광명소가 아니다. 기와 파편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항아리 조각 하나에서 없음의 이유를 찾는 것. 그 '없음'으로 인해 새로운 '있음'이 부여된다.
잘 만들어진 장편소설과 같은 대서사로서 우리를 시간에 대한 사색으로, 무상에 대한 의미로 이끄는 곳이 바로 절터가 아니겠는가.
없음의 미학이 결국 있음의 뚜렷함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것. 흔적 없음으로 인해 흔적을 찾아가게끔 된다는 것.
서사 혹은 아이러니가 수시로 작동하는 곳. 그래서 낯설기만 한 이 곳에서 이 낯섬의 배후에 숨어있는 의미를 묻게 된다.
해가 뜨고 지고, 구름이 있다가 사라지는 곳. 나무 그늘 속에 잠긴 절의 옛그림자. 홀로 남아 동쪽 어느 봉을 응시하는 귀부(龜趺) 만이 산을 채운다.
三川의 시냇물은 어느 순간 말랐을거고, 마른 우물은 흙 속에 사라져갔다. 과거가 현재를 규정하고 현재가 미래를 규정해왔듯이, 이곳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과거는 지금 어디에 있는걸까. 그리고 무엇에 대한 갈망이 흩어진 돌조각 사이로 1000년 남짓의 유적을 남기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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