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속에서 살아간다. 상처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갈 때, 이 세계는
내 상처 속에서 재편성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때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 김 훈
이제 내려가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 여긴 정상이다.
지금까지 올라왔던 멀고도 지난한 길을 내려가게 될 것이다.
이틀동안 머물렀던 곳이 정이 들었는지 아니면 사람들과 그새 정이 들었는지 떼어 놓는 발걸음이 쉽지만은 않다.
이들 원정대는 내친 김에 브로드피크를 수일내로 오를 것이라고 한다.
앞에 가까운듯 보이는 콩코르디아는 절대 가깝지 않다. 빙하를 따라 개미처럼 사람들은 흘러갈 뿐이다.
브로드피크 옆을 지나간다. 깎아지른 산의 급사면 위로 쏟아질 듯 서있는 세락과 빙탑을 보면서 그 광포함과 대담함에 아찔할 뿐이다. 치솟은 구름 위로 당장이라도 눈사태가 일어날 것만 같다. 그 광대한 눈처마 밑으로 수많은 주름이 흘러내려 빗살무늬처럼 퍼져내리고 있다.
이런 광대함을 보면 저절로 대자연의 숭고함을 떠올린다. 왜 저런 모양으로 있을까 생각하면서 평상시처럼 그 의도성을 궁금해 한다. 우리의 호기심과 궁금함은 거기에 펼쳐진 그 숭고함과 장엄함에수시로 개입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대상에 마음이 끌리는 순간 세상이 돌변한다. 모든 것이 그 대상을 위해 쏠리고 집중된다. 심지어 기억을 총동원하여 이 쏠림의 기반이 무엇인지를 묻게 되는 것이다.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브로드피크의 사면이 순식간에 나에게 의미로 다가온다.
눈처마가 지금이라도 쏟아져 흘러내릴 것 같은 죽음의 지대에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몇개의 점들이 희미한 선이 되어 설벽을 오르고 있다. 그 밑으로는 크레바스 투성이의 빙하지대를 건너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빙하의 세락지대에 사람의 모습을 유추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부여되면서 이 모든 풍경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저절로 윤리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원래 자연의 일이지만 인간이 개입되어 윤리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아니 반대로 자연을 윤리적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그 세계를 바라보아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세계는 나를 보는 순간 그 심연 깊숙한 곳을 열어주는 것이리라.
프랑스 화가 세잔이 말한대로 “풍경이 내 속에서 자기를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라는 의미가 공감되는 순간이다. 의식과 풍경이 서로 몰입되기 전까지는 의식과 풍경은 서로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때 풍경과 다르게 존재하는 의식이야말로 상처 입은 의식의 찌꺼기일지도 모른다.
< 브로드피크의 하단부를 향해 가는원정대 - photo by yosanee >
아직도 많은 원정대가 브로드피크 BC에서 대기하면서 정상을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구름은 브로드피크의
위와 아래를 오르내리며 감싸고 있다.
< 브로드피크BC >
콩코르디아로 향해가는 도중에 K2 BC를 향해가는 파키스탄 모자(母子)를 보았다. 애기가 4살정도 되었고 애기 엄마도 젊어 보였다. 아이에게 K2 BC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이 험한 길을 올라온 이유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도 모르게 K2를 뒤 돌아보았다.
나에게 K2는 어떤 의미이며 여기에 왜 와있는 것인가.
K2를 향해 조금씩 올라와 고도가 높아져 마침내 BC에 도달하게 되면서, 그제서야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정리되지않은 채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보면서 여기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하얀 설산에서, 내가 다다르고자 했던 곳의 끝에서, 늘 물어온 것은 바로 이 곳의 의미였다.
이 곳의 의미를 묻기위해 시간의 지층을 파보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받아들인 무수한 이미지들이 응축되고 응축되어 시간의 지층인 기억으로 쌓여왔다.
'지금 여기'의 일상이 쌓이고 모여 적분된 것이 삶의 모습이다.
일상의 뒤안길에서 그냥 쌓아 두었던 지층은 파는 순간 온갖 덩어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힘들어 반항조차 제대로 못했었던, 그냥 애쓰기만하며 살아왔던 수많은 날들.
심연으로 층층히 복잡하게 얽혀있는 온갖 욕망들.
대충 묻어 놓았던 수 많은 질문들, 끝끝내 해결 안 된 억압의 앙금 덩어리들.
원망, 분노, 미움, 좌절의 모습들.
애증의, 갈망의, 자기연민 덩어리들.
눌러 두었던 무의식에 가라 앉아있던 상처와 욕망이 솟아오른다.
그 속으로 분노는 강물처럼 소리없이 흐른다.
돌이켜보면 삶은 얼마나 콤플렉스 덩어리였던가.
지지 않으려 했던, 지면 안 된다고 해왔던 수많은 채찍질이 이제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해도 자신이 서있는 자리는 항상 타자의 눈을 위한 자리는 아니었던가.
남보다 낫기 위해서, 강하게 보이기 위해서, 혹은 자신이 싫어서, 자신을 잊기 위해서,
어느 순간 우리의 긴긴 여행은 시작되었던 것 아닌가.
그래서 끝없는 길을 잘게 쪼개어 미분하면서 한발짝 내딛을 때 자신의 분노와 슬픔, 두려움과 외로움들이
조금씩 물러나지 않았던가. 그래서 중독이 될 정도로 더욱 습관적으로 찾지 않았던가.
어떻게 다시 되돌아 갈 것인가.
얼마나 많이 걸어야그 많은 욕망과 자기연민을 밟고 내려가서 해체시킬 것인가.
조각조각 상처받은 일상이 모여서 이루어진 견고한 시간의 지층은 반대로 매순간 '지금 여기'에서 미분적인
일상의 해체를 통해서만 제대로 해체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층은 허물어져 견고한 빙하의 한 부분처럼 서서히 녹아내려 흘러가기 시작할 것이다.
얼음은 녹고, 물은 아래로 흐르고, 지층은 무너져 내리며, 앙금은 부서져가고, 그 경험조차 서서히 잊혀져갈 것이다.
이제 내려 가는거다.
나의 정상은 내가 부여하는 의미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발길을 돌리는 뒤로 K2의 먼 그림자가 아른거리며 밟혀온다.
뒷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은 그대 만은 아니기에, 나는 그대의 뒷 모습조차 볼 수 없기에, 먼저 돌아서는 것이다.
이제 나의 먼 길을 다시 잘게 쪼개어 미분하면서 걸어갈 것이다.
멀리 콩코르디아의 텐트촌이 보인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것처럼 보이지만 빙하를 돌아서 가야되기 때문에 꽤 먼 길이다.
저 멀리 하늘과 산이 맞닿은 곳으로 콩코르디아의 광장을 꿈틀거리며 떠나는 한줄기 빛이 보인다.
이 투명한 빛은 아래로 흐르고 흘러 호불체를 지나 인더스강이 될 것이다.
< 흐름 - photo by yosanee >
< 콩코르디아 - photo by yosanee >
K2 BC를 출발한지 4시간만에 콩코르디아로 되돌아 왔다.
저녁마다 새들이 둥지로 들어가 부대끼며 행복해하듯, 취한 객들이 술집의 안온함을 그리듯이, 이틀만에 다시 보는 유일한 안식처인 텐트가 반갑다.
머리속에서 동일한 노래가 한 소절씩 공명된다.
몸이 아우성치며 뒤척이는 모습에 천천히 노래는 사라져간다.
꿈 속에서 나즈막한 소리를 들었다.
네가 들은 것은 네 자신의 노래가 아니야. 단지 네 헛된 감정이 스스로에게 내지르는 연민의 소리일 뿐...
멀리 지층이 허물어져 한줄기 빛으로 흐르는소리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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