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니는 천상 찍사인가보다. 해뜨기 전 이른 새벽부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카메라 장비를 갖추어 밖으로 나간다. 텐트 밖으로부터 몰아쳐오는 찬바람에 선잠조차 사라졌다.
밖을 살펴보니 어제 시원하게 흐르던 생명의 젖줄인 개울이 흐르지 않는 것이다. 빙하가 얼어붙은 것이다.
갑자기 세상이 삭막해지는 느낌이다. 텐트 밖의 세상은 뿌옇고 반쯤은 어둡다.
작은 능선 위에 롭상스파이어를 배경으로 서 있는요사니의 모습이 보인다.
당나귀에 짐을 싣고 출발한다. 오늘의 목표는 우르두까스(Urdukas, 4050m)이며 호불체로부터 5Km 조금 넘는다.
고도차는 120미터에 불과하지만 급경사를 올라야 한다.
우르두까스(urdwa(큰 바위) + kas(부서진) )는 부서진 큰 바위란 뜻이라고 한다. 우르두까스로 가는 길은 어제처럼 쉴만한 그늘 하나 없는 너덜 길이다. 여기서는 포터, 당나귀, 트레커들이 모두 동일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산은 푸르다. 그 푸르름은 질서 정연함을 연상케 한다. 푸르름은 또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여기 발토로의 산은 잿빛이다. 잿빛도 그냥 잿빛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이등변 삼각형과 마름모꼴의 집합체이다. 상징과 이미지의 총합이 되어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원초적 무질서의 세계이다.
공산님은 이 발토로의 산군을 밀가루 반죽에 비유하였다. 묽은 밀가루 반죽에 손바닥을 댄 후 손을 들어 올리면 밀가루 반죽은 손바닥을 따라 올라와 수많은 뾰족한 첨봉을 만들어 낸다는 설명이다. 과연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여기가 만들어진 것일까.
또한 이 놀라운 세계는 풍화작용과 침식작용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공간이 수축되어 있다. 좁은 공간 속에 억지로 밀어 넣었을 때 구겨져서 올라오는 주름들의 집합체이다.
어떤 이는 이 발토르의 공간을 칸트가 말한 “장엄한 숭고미”로 표현하기도 한다.
칸트에 있어 숭고미란 무엇인가?
신성한 숲 속의 키 큰 너도밤나무와 쓸쓸한 그림자는 숭고하며, 화단과 낮은 산울타리 그리고 그림 속의 잘 가꿔진 꽃들은 아름답다. 밤은 숭고하며, 낮은 아름답다. 숭고함은 감동시키고 아름다움은 매료시킨다...
숭고한 것은 언제나 반드시 거대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은 작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숭고한 것은 단순한 것이 틀림없고, 아름다운 것은 장식적이고 치장된 것일 수 있다.
이런 느낌은 어떤 것이며 어떤 감정일까. 마셔브롬 지능의 한 봉우리 밑의 빙하가 마치 쏟아질 듯 위협한다.
칸트에 있어 숭고함은 대담함이며 광포함이다.
마치 위협이라도 하는 양 대담하게 튀어나온 가파른 절벽, 엄청난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채 하늘 높이 겹겹이 쌓인 시커먼 먹구름,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화산, 황폐만을 남기고 지나가는 태풍, 격한 파도가 치솟는 끝없는 대양 그리고 광포하게 흘러내리는 높은 폭포와 같은 것들을 보노라면, 우리는 우리의 저항능력이 이런 것들의 힘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나약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안전한 곳에 있다면, 그 광경은 두려우면 두려울수록 그만큼 더 매력적인 것이 되고,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대상을 기꺼이 숭고하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런 대상들은 정신력을 일상적인 평범함을 넘어서도록 고양시켜주며, 또 우리 내부에 있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저항능력, 즉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는 자연의 엄청난 위력에 우리 자신을 견주어 볼 수 있는 용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몇 명의 어린 포터가 보인다. 아마도 20살 정도 되었을까. 더 어린 친구들도 있는데 이들 모두 원정대를 따라 왔다고 한다.
이 발토로 빙하 위에는 크게 세 종족이 살고 있다. 포터족과 트레킹족과 원정대족이다. 이 종족들이 각각 꿈꾸는 세계는 다르다. 각자는 다른 꿈을 꾸고, 다른 세상을 추구하다 공통된 영역에서 마주치기도 한다. 과연 그 차이는 무엇이며, 포터족의 꿈은 무엇인가.
왼쪽으로 급경사가 진 비탈길을 오른다. 밑에는 무저갱처럼 빙하가 큰 입을 벌리고 있다. 조심조심 발을 딛는다.
비탈 너머 멀리에 무즈타크와 브로드피크가 나타났다.
뒤로는 빠유피크와 그레이트 트랑고타워의 산군이 웅장하게 서있다.
]오전 11시, 이른 시간에 목적지인 우르두까스에 도착하였다. 오늘의 운행은 여기까지다.
몇 시간 걷지 않았지만 더위와 너덜길에 피곤하기만하다. 다녀본 몇몇 트레킹 코스 중에서 가장 힘든 것 같다.
짐이 가볍긴 하지만 쉴만한 그늘이 없어 무더위에 지쳐가고, 게다가 길은 빙퇴석의 너덜 길이다.
매 걸음 돌을 밟아도 발을 지탱해주지 못하고 움직여 버린다. 빙하지대는 아주 쉽게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이 캠프장은 빙하지대가 한참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다. 캠프장 뒤에 솟아있는 헬멧 모양의 바위가 바로 이 우르두까스라는 이름이 있게 한 바위로 보인다.
< 우르두까스의 캠프장 >
< 식당텐트(중)와 야영텐트(우)>
텐트 안에서 본 경치는 또 다르다. 세상에 이런 풍경을 가진 텐트 사이트가 있을까. 텐트의 모기장 밖으로, 어제부터 지나온 봉우리와 빙하가 다 보인다. 각각 치솟은 봉우리들 사이로는 흰색의 빙하가 내려오고 있다. 아파트로 치면 여섯 동에 해당하는 봉우리들이 우뚝서있다. 또한 빙하는 마치 아파트 동과 동사이의 송배관 시설처럼 보인다.
이런 삭막한 해석에 공산님과 요사니는 낭만이 없다고 일축한다.
하긴 고상한 ‘숭고미’ 대신에 느껴지는 처절한 ‘삭막함’의 느낌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에 스스로 만족하였다.
<브로드피크 원정대(김재수, 고미영팀)> < 러시아 트랑고 원정대>
이 캠프장에는 많은 원정대 팀들이 모여있다. 트랑고를 성공적으로 등반하고 빙하를 건너 온 러시아 등반대도 있고,
브로드피크를 도전했다 고배를 마신 슬로베니아 사나이도 있었다.
어제는 호불체를 향하는 길에서는 브로드피크를 무사히 등정한 김재수․고미영팀을 만나기도 하였다.
성공을 했건 실패를 했건 이들 등반대의 꿈은 발토로빙하의 너덜 길이 아니라 그들이 오르려는 산의 정상부였을 것이다.
또한 어떤 이들은 그들의 갈림길에서 헤어져 발토로 빙하 위를 흐르는 바위에 동판으로 남겨지기도 했을 것이다.
해가 지고 있다. 이 경이로운 자연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어느 순간 마치 꿈을 꾸다가 깬 직후의 느낌처럼 내가 여기 있다는 느낌이 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밖과 안의 구별이 모호하다. ‘나’라는 것이 바깥의 경험을 간직한 채 내 속에서 느껴진다.
세상이 현존하는 느낌과 내가 여기 있다는 느낌이 일치된다.
이 척박한 비밀의 땅에서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꿈을 꾼다.
자신이 꾸는 꿈이 숭고와는 거리가 먼 잡탕의 꿈일지라도 꿈꾸는 자는 행복하다.
모든 것은 태고의 정적을 간직한 채 도도히 흘러갈 뿐이다.
그리고 한조각 의미로, 흔적으로 남는 것은 각자의 꿈일 것이다.
'파키스탄 K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콩코르디아 - 시간의 지층 (4) | 2009.07.13 |
---|---|
고로 II - 일상 (4) | 2009.07.05 |
호불체 - 빙하위의 꽃 (3) | 2009.06.18 |
빠유의 푸른 빛 (2) | 2009.06.08 |
줄라(Jhula) - 경계 너머 (2) | 2009.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