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킥을 얻은 호날두는 크게 다섯 걸음의 뒷걸음질을 한 후 양발을 넓게 벌리고 선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조용히 적들이 스크럼을 짜는 것을 주시한다. 그의 눈은 매의 눈처럼 스크럼 너머 지평선에 걸려있는 골망을 응시한다. 일진광풍이 지나가며 그의 옷매무시를 흔들어 놓는다. 마치 장비가 장판교에서 수십만의 적들을 홀로 막아선 기세처럼 보인다. 이 녀석은 무공을 좀 아는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그의 발끝을 떠난 공은 화살처럼 지평선너머 위로 휑하니 날아가 버린다. 그것도 몇 번 반복하니 하품이 나는게, 당사자의 찌그러진 흡족하지 않은 눈매를 통해 그냥 겉저리같은 화려하기만 한 초식의 연장선 정도가 느껴질 뿐이다.
한편 호날두의 별도움 안되는 화려하기만 초식에 식상할 무렵, 승부차기에 나선 스페인의 라모스는 초 슬로우 모션으로 날아가는 파넨카킥을 성공시키며 고수반열에 합류했다. 결국 호날두는 승부차기의 대미를 장식해보지도 못하고 끝났다.
사실 진정한 고수는 그보다 몇일전 파넨카킥을 더욱 느리게 성공시킨 이태리의 피를로이다. 모든 무공은 영원회귀의 반복을 통해서 과거로 회귀한다. 항상 무공은 선대의 비급을 찾음으로써 강해진다.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알려지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을수록 무공의 급수는 올라간다.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 있으며, 그 동굴은 천길 벼랑의 중간쯤에 있다. 피를로는 체코의 파넨카가 20세기 후반에 남겨 놓은 비급을 연마했다. 과거는 늘 현재보다 강하므로, 라모스보다 피를로가 고수이고 피를로보다 무공의 창시자인 파넨카가 고수라고 보면 될 것이다.
사실 이 대단한 고수들보다 몇 해 전부터 좋아하던 친구가 있다. 키가 작고 앞머리 숱이 별로 없는 친구인데, 이 친구는 키가 작고 머리숱이 많은 촌스런 한 친구를 닮았다. 키가 작고 머리숱이 많은 촌스런 총각은 아르헨출신으로 메시라고 한다. 메시는 누가보기에도 무림세가의 공자처럼 생기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김태희공주급이 밭 맨다고 하지만, 아르헨의 논에서는 딱 이 총각이 밭을 잘 갈게 생겼다. 쳐진 눈과 순박한 얼굴, 겨울이면 빨개질 양 볼을 소유한 그는 당금 무림의 최고수이다. 어떤 이는 그의 놀라운 재능은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고 하면서 메시는 메시아의 약자라고도 말하지만 그닥 믿음은 가지 않는다. 호날두가 나름 무림세가 출신의 초절정 고수를 자처하며, 보여주는 초식이 워낙 화려함에도 갖추지 못한 2%의 내공을 이 농촌총각은 갖추었다.
아무튼 이 메시아급 메시라는 친구를 닮은, 키도 작고 앞머리카락 일부가 없는 친구는 이니에스타이다. 앞머리가 별로 없는데다 이마가 툭 튀어 나온 이 친구는 다른 고수들보다 상대적으로 내공의 중후함이나 초식의 화려함은 없어 보이지만 영리하게 자신만의 무공을 전개한다. 그의 머리없음과 알듯 모를듯한 진지함이 관심을 끌었는데다가, 마침 몇년전 월드 무림대회에서 결승골을 넣어서 자신이 당금 무림의 초절정 고수에 속함을 만천하에 알리면서 더욱 숭모하게 됐다. 이 친구의 진지함이 맘에 들어서 아마도 무공실력만 좋은 것이 아니라 詩 書 畵 등 다방면에도 조예가 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관심은 스토커처럼 그의 배경을 궁금하게 했다. 이 친구에 대해 검색해보니 청천벽력과 같은, 감동적인 과거가 눈에 띄였다. 초절정 고수라면 으레 가져야 할 명문가문 출신이 아니라, 멸문지화를 당한 가문의 고아였던 것이다. 게다가 어릴적 행동이 괴이하여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결과 자폐증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자폐증을 축구라는 무공으로 극복하여 지금의 초절정고수에 이르렀다는 감동적인 얘기가 인터넷에 가득하였다.( http://www.fomos.kr/gnuboard4/bbs/board.php?bo_table=talk_sports&wr_id=489769 참조)
그의 영리함은 그의 자폐에서 기인하나보다 하고 생각하면서 다른 글들을 읽어보니 이번에는 영국출신 루니에 대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루니는 다운증후군이었던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어쩐지 그의 때이른 탈모가 의심스러웠고, 작년에는 급기야 다수의 머리카락을 이식한 이유가 있었겠구나 생각했다. 결국 그의 탈모는 다운증후군의 후유증일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림의 고수들은 이런 처절한 고통을 이겨내는 수련을 통해서만이 최고의 초절정고수가 되는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숙연해졌다. 기타 난관을 극복한 몇 명의 무림고수들이 더 등장하는 것으로 얘기가 끝이 난다. 하필 이런 우연이 있을까하고 계속 뒤져보니, 인터넷을 달군 이 이야기들이 전부 무림의 뒷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 이니에스타의 자폐증 극복담은 네이버의 메인에 까지도 걸렸다고 한다. 역시 무림의 대소사에는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끊이지 않는 법인가 보다.
마지막으로 이태리의 발로텔리는 유로 무림대회 준결승전에서 머리로 한골, 발로 한골을 넣는다. 발로 결승골을 넣은 후, 그는 자신의 도복 상의를 훌러덩 벗더니만 고대 스파르타의 전사의 흉상과 같은 포즈를 취한다. 일견 그의 출신과 차별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리는 것처럼 보였다(No Racism). 한편 슬로비디오로 보니 무공으로 잘 닦인 자신의 몸을 과시하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Sexuality). 양의적인 그의 세레머니는 뭇 무림대회가 갖는 상징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꼬박 챙겨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인지라 하이라이트만 봐왔지만, 이제 마지막 한경기만을 남겨뒀음에 아쉬움이 남는다. 수비축구의 대명사인 카테나치오를 변형시킨 이태리가 이길 것인가, 아니면 이름조차도 뭔가 그럴듯한 거짓 공격수를 내세운 ‘가짜 9번(False Nine)"의 새로운 축구를 구사하는 스페인이 무림대회의 왕좌에 앉을 것인가? 발로텔리와 이니에스타 등등의 초절정 고수를 같이 볼 수 있어 내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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