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실제로는 모든 마음속으로 자신의 모든 경험의 장을 가로지르는
정신적인 선이나 경계를 긋는다. 그런 다음 그 경계의 안쪽에 있는 모든 것을 자기라고 느끼거나
자기라고 부른다. 한편 그 경계 밖에 있는 모든 것을 '비자기non-self'라고 부른다. 다시말해,
당신의 자기 정체성은 전적으로 그 경계선을 어디에 긋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 켄 윌버 from무경계(無境界)
사실 멀리 북만주의 끝인 이곳까지 올줄은 예상도 못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 연변에서의 의료봉사와 정신학회 참석 그리고 백두산 탐방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3부 행사에 해당하는 이번 여행의 길이 장난이 아니다.
불안한 것은 10여시간 이상 걸리는 불편한 여로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행로가 어딘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정성덕원장님 내외분은 이미 환갑을 훨 지난 연세인지라 힘든 기색이 역력하였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정원장님의 친구분이었고, 이분은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는 분이었다.
종교가 다르긴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처음부터 모두 맡기기로 하였기에, 불편한 것이 나오면그것을
관(觀)하리라마음먹었기에작정하고 따라나선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보너스나 부록처럼여겨졌던 여행의 장이 좀 더 열린 마음을 갖게하였다.
첫날 화승촌에서는 100여명의 동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인원이 3명밖에 되지 않으므로, 사모님이 접수를 보면서 혈압읍 재고정원장님이 진료를 하면,
내가 약을 나누어 주었다. 한번도 해보지 않을 일이라 처방전을 보고 약을 주는 것이 쉽지않았다.
한편 그 친구분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올수 있도록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면서 바빴다.
<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
< 종류별로 분류한 약 >
그 다음날 동선촌(東鮮村)에서도 계속되었다.
동선촌은 동쪽의 조선족 촌이라는 뜻이리라. 그들은 이렇게 늘 민족을 잊지 않고 있었다.
몇명의 동포 어린 여학생들이 해맑은 모습으로 와서 상담을 하기도 하고 몇몇 어린애들은 역시나제 놀기 바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40대 이후였다. 역시나 여기도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 뜸한 탓이다.
그나마 방학이라서 소수의 젊은 사람들이 와있기도 하였다.
한편 이곳의 의료사정은 좋은 편이 아니다.
물론 병원이 가목사 시내에 있긴 하지만, 약의 효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동선촌에서도 어느덧 100여명 이상이다녀간 이후,한 가족이 표정이 밝게 들어오면서 17살 아가씨를
봐달라고 한다. 10여일전 학교에서 잠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고 한다.
문진을 하던 정원장님의 목뒤 혈관이팽행해지더니 아무렇지 않게 본인이 직접 약을 지으신다.
다 돌아간 후 한숨을 쉬시며 이제 시작이라고 말씀하신다.당사자 앞에선 말씀은 안하셨지만 그 소녀는
간질이었던 것이다.가슴이 갑자기 답답해왔다. 이제 피어나는 꽃인데...
평소처럼 그녀의 업력(業力)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순간 냉혹한 현실의 칼날과 종교적 가치관의 축, 그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냥 가슴이 아파왔다...
이틀째 진료는 그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30여년전 다리를 크게 다쳐 관절이 뒤틀어진 분이 마지막으로
오셨지만 당분간 먹을 진통제를 지어주는 것으로 마감을 했다. 그러나 머리속은 계속 피어나는꽃...이었다.
동선촌의 촌장이 우리를 초청하였다. 고마움의 표시리라. 특별히 겸사겸사 개를 잡았다고 한다.
촌장이긴 하지만 이제 설흔을 갖 넘은 친구다.
그러나 이 친구도 쉽지 않다. 교회와 기존의 원로들과의 갈등일게다.
남은 시간 우연히 찾은 초등학교 자리에는 우리의 경로당 처럼 많은 분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놀고 계셨다.
한편에서는 마작을 하고, 한편에서는 장기를 둔다. 아주 신명난다.
이분들은 들어가서 사진을 찍으니 좋지않은 감정을 보인다. 수근수근... 저그...한국에서 교회땜시 왔다고...
사실 나로선 억울하긴 하다.
밖에는 폐허같은 집이있고 활짝 핀 꽃이 있다.
이쯤되면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이 환상보다 더진지하지 않을까라고...
촌장집으로 가는 길에 친절하게도일몰과 무지개를 보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무지개는 일몰의반대편에 펼쳐져있다. 공시성? or 인드라망?
마침 그날밤 급히 왕진을 가게 되었다.
가랑비에 불도 없고, 캄캄한 흙탕길을 걸어 도착한 집은 부엌과방이 붙어있는작은 집이었다.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의 노인.지는 꽃.
다리를 주무르고, 링거를 놓으면서 응급조치를 하였다.
인민군으로 복무하였고 한국전쟁 후훈장도 탔다고 한다. 전후 중국 공산당의 지역간부도 역임하였다 하고.
지금 여기서 그게 무슨 의미일까?
역시 이 하루는 많이 길었다.
붉은 눈으로, 피어나는 꽃과 핀 꽃과 지는 꽃을 생각한다.
사실 나는 꽃보다 무지개가 더 좋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간 위만 보고 살아왔으므로...
그렇다면 바꿔야 하나?현실이 환상보다더 친절하다라고?
종교의 경계, 이데올로기의 경계,아픔과 기쁨의 경계,현실과 환상의 경계, 삶과 죽음의경계 -그 경계.
그경계가 없음을 이야기 하고싶다.
그 인민군 양반?
술한잔하며 글을 쓴다.
"친구여, 우리의 술은 너무 맑은 누군가의 목숨이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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