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의료봉사가 끝난 후 같이 있던 30여명의 일행이 우르르 귀국하기 위하여 떠났다.

항상 그렇듯이 헤어짐은 서운함을 낳는다. 비록 만난지 4일밖에 안된 사람들이긴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정성덕원장님과 사모님, 친구분 - 달랑 4명이 남았다.

남은 약을 전부 싸가지고 이제 만주 벌판북족끝에 사는 조선족 동포를찾아 먼길을 떠날 것이다.

흑룡강 성의 가목사(佳木斯, 중국말로는 자무스)가 그 목적지다. 연길에서 야간 침대버스를 타고

목단강을 지나 정북쪽으로 13시간을 달리면 도착하게 되는 러시아의 국경에 인접한 도시이다.

야간 침대버스의 이름은 "호화와보객차" - 호화스러운침대 버스라는 뜻.

버스 안은 2층으로 되어있고 꽉 찬 담배연기를 즐길수 있고,제공되는 담요는 아주 퀴퀴한 냄새가 난다.

한여름이긴 하지만 위도가 높고 밤에 뚝떨이지는 기온 때문에 안덮을수가 없다.



오후 3시경 출발한 버스는 끝없는 벌판을 지난다. 공사중인 도로와 마을을 스쳐지난다.

밤새 만주벌판은 그렇게 끝없이 펼쳐져 있다.

비몽사몽 자고 있는데 차창밖으로 해가 떠오고 있다. 세상에 지평선에서 일출을 보게 될 줄이야...

그것도새벽 3시에 해가 뜬다. 점점 북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렇다.


< 지평선의 일출>


< 가목사 시내 >


아침 5시경 가목사에 도착하였다. 가목사는흑룡강성의 북쪽에 위치하여 있으며 흑룡강을 넘으면 러시아가 된다.

여기서 국경까지는 아주 가깝다고 한다. 또한 가목사는 한약재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조선족 청년이 마중을 나와있고 조그만 차량을 타고 마을로 향한다.

벌판사이의 신작로를 따라서 신명나게 이동하였다.



가목사의 조선족 마을은 러시아에 있는 조선족 마을처럼 일제 강점기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어느 이유건 간에 이 먼 곳까지 진출해 있는 우리 민족의 삶이 무척 궁금하였다.

가목사에는 몇몇 조선족 마을이 있는데 그중 이번에 방문하는 화승촌과 동선촌 두개의 마을이 큰 편에 속하며,

합쳐서 대략 300호 정도의 조선족 마을이다.

중국의 여느 조선족 마을 처럼 이 마을에도 한류열풍에다가, 가가호호 1명이상이 한국에 들어가서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중국 한족에 비하여 생활 수준이 높고, 나라에서 불하된 땅을 경작하고 있다.

땅을 빌려주는 기간은 50년이라고 하며 기간이 끝나면 재계약한다.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고 10월부터 3월까지가 겨울에 해당한다고 한다.

주된 곡물은 쌀과 옥수수이며 워낙 땅이 넓어기계농을 하고 있다.


< 가목사 교외의조선족 마을 - 화승촌 >

도착해서 둘러본 화승촌은 아주 아늑하고 작은마을이다. 마을은 옹기종기 모여있고 마을 밖으로는

끝없는 농작지가 펼쳐져 있다.

슬레이트 지붕의 집과 초가집이 공존하고음식점을 알리는한글간판이 있다.



평화로운 정적에 취하여 마을길을 돌아본다. 마치 오랜 외유 끝에 고향에 돌아온 듯하다.

길가에는 때이른 코스모스가 가득하고 멀리 개짖는 소리까지 정답다.


마을 밖으로 펼쳐진 벌판의 광활함은 넋을 잃게 한다.

사방에 걸림이 없다. 땅은 간데 없고 하늘만 사방에 가득하다.



내 발밑으로는 허허한 들판이 펼쳐져 있고 한줄기 외길이 가르마 같이 끝도 보이지 않는다.

가르마 같은 논길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 간다. 원초적 본능처럼 우리 민족의 무의식이 다시 떠오른다.

그 영감에 나즈막히 노래를 부른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끝없는 만주벌판의 끝은멀리 지평선에 걸려서 이렇게 조금씩 해가 저물어 온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개벽 70호, 1926.6)

Posted by 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