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기상하여 밖으로 나가니 날씨가 싸늘하다. 두꺼운 옷을 입고 레스토랑으로 가니, 외국여성들은 반팔과 반바지 차림에 출발준비를 하고 있다. 게다가 짐도 많이 지고 다니니 체력이 장난이 아니다.
아침을 별로 먹고싶진 않았지만, 오늘 걸야할 길이 만만치 않은지라 억지로 짜파티(밀가루 빵)와 계란2개를 우겨넣고 8시경 출발하였다.
왼쪽 옆에 있던 낮은 계곡은 다리를 건너면서 깊어진다. 경치가 점점 멋있어진다.
1시간여를 걸어가니 먼저 출발한 외국여성들이 큰짐을 지고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 뒤로 바위구릉과 먼 능선이 탁 트여 펼쳐진다.
계곡 건너편에는 산사태 위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목동(?)이 야크떼를 몰고 가고 있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개미들이 기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좀 전에 보았던 바위산이 바로 앞에 다가 오면서 마을이 시작되며, 일군의 트레커들이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다. 마치 설악산의 일부처럼 주위의 풍광이 낯익다.
10시가 조금 넘어 다라빠니(Dharapani, 1900m)에 도착하여, 두번째 check point에서 다시 한번 신고를 하였다. 목조와 석조 건물로 이루어진 집들이 인상적인 규모가 큰마을이다. 바닥에는 큰 돌들이 깔려있고, 말인지 당나귀인지 헷갈리게 생긴 당나귀들이 큰짐을 지고 앞서가고 있다.
다라빠니는 마나슬루(Manaslu) 라운드의 갈림길이다. 지도상으로 동북쪽에 있는 두드강(Dudh Khola)을 따라 올라가면 5210m의 라캬 고개(Larkya la) 가 있고 그 너머로 한바퀴 도는 것이 바로 마나슬루 라운드이다. 안나푸르나 라운드보다 힘들고, 랏지가 없는 곳이 많아 먹을 것과 텐트를 모두 가져가야 한다. 지나가면서 언젠가 한번 가보고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은 안나푸르나 라운드 하기도 벅차다.
계곡 너머로 멀리 마나슬루의 일부가 하얗게 설산이 되어 보인다. 마치 미지의 계곡으로서 과연 어떤 길이 펼쳐져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잔뜩 자아나게 한다.
< 마나슬루 라운드의 갈림길 - 멀리 마나슬루의 한자락이 보인다 >
하늘 위로 매가 높이 날면서 선회하고있다.
아직 안나푸르나 연봉은보이지 않는다. 안나푸르나 지역에는 8000미터가 넘는 안나푸르나 1봉(8091m)외에도 안나푸르나 2봉, 3봉, 4봉이 포진되어 있고, 강가푸르나, 닐기리, 람중히말, 마차푸차레등이 넓게 퍼져 있다.
안나푸르나 라운드는 동쪽끝에서 시작하여서 북쪽을 향해서 걸어가는데, 그중 제일 먼저 람중히말과 만나게 되고, 피상에서 안나푸르나 2봉과 4봉을 보게 되며, 마낭을 지나면서 안나푸르나 3봉과 강가푸르나가 나타난다.
그러나 좁은 계곡을 걷다보니, 안나푸르나의 연봉을 보는게 쉽지 않다.
사실 라운드하는 내내 안나푸르나 1봉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만큼 안나푸르나1봉은 7천미터급의 수많은 봉우리들에 둘러쌓여 베일에 가려져있다. 안나푸르나 1봉뿐만이 아니다. 트레킹 3일째인 오늘도 안나푸르나 식구들을 통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에 부응하듯 바가르찹(Bagarchap, 2160m)을 들어서면서 갑자기 눈이 부시게흰 설산의 자락이 나타난다. 안나푸르나2봉(7937m)의 한 능선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안나푸르나 2봉은 말 그대로 안나푸르나 지역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2봉 옆에는 4봉(7525m)이 사이좋게 붙어있다.
모르는 사이에 고도가 2천미터를 넘더니 주변의 나무 종류들이 조금씩 바뀌고 있고, 좁은 길이 넓은 분지로 바뀌면서 일단의 마을과 산자락이 나타난다. 랄은 오늘도 여기가 어디고 저기가 어디다라고 열심히 얘기를 하더니 어느덧 앞서가서 이리저리 배열된 광고판 앞에서 산을 보며 기다려준다.
다냐규(Danagyu, 2300m)에 도착하여 마당 넓은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점심을 시켜놓고,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는다. 점심메뉴는 거의 매일똑같다. 계란 볶음밥이다. 여러가지 먹어본 중에서 그나마 제일 무난하기 때문이다.
랄은 내가 밥을 먹는동안 사라진다. 주로 주방에 마련된 공간에서 refill이 가능하여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달밧을 먹는다. 지역에 따라 달밧을 공짜로 제공하는 곳도 있지만, 사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나선 길은 두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산중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하나는 강을 따라 가는 길이다. 물론 나중에 두길은 다시 합쳐진다. 마나슬루를 비롯한 설산을 좀 더 높은 곳에서 잘 보기 위해 힘들지만 산으로 올라가기로 하였다.
오르는 산속은 우리의 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나무, 전나무가 곳곳에 있고, 단풍처럼 적당하게 나뭇잎들도 물들어 있다.
30분 정도의 급경사를 올라가니 끝이 보인다. 꼭대기에서 보는 경치, 특히 마나슬루의 모습이 기가막힐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올라서 보는 산중은 구름만 잔뜩 끼어있다.
대략 1시간 정도의 길을 더 가니 목장이 나타난다. 전망이 아주 좋은 곳에 자리잡고 나무로 된 울타리가 멋진 별장같은 곳이다. 조금 더가니 젊은 총각 둘이서 물소처럼 생긴 작은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있다. 일하는 표정이 아주 즐겁다.
산속을 한참 내려오니 갈림길이 합쳐지는 코토(Koto, 2600m)이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져 땅거미가 어스름하게 지는 길 앞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솟아있다.마치 요세미티 지역의 일부처럼 대단하다.
절벽 바로 밑쪽에는 아주 특이한 작은 마을이 있다. 줄줄이 들어선 2층 목조 건물 앞의 기둥에는 말이나 소를 매어둘수 있게 하였다. 마침 소 두마리가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소싸움을 피해 잽싸게 지나간다.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경찰들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차메(Chame, 2670m)에 도착한 것이다.
인적사항을 기록하고 마을로 들어선다. 마나슬루 랏지에 머물기로 하고 들어가니 이스라엘인들이 바글바글하다. 이기적이고 시끄럽고...등등 여러가지로 매너 없음에 밥맛 떨어짐을 느낀다.
랄과 함께 저녁 겸 맥주한잔을 하면서 내일 일정을 체크한다.
고도를 천미터 높히며, 20여 킬로미터를 걸어선지 몸이 무척 무겁다. 긴 코스 만큼 많은 것을보고 느낀긴 하루였다.
식당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일찍 들어가서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