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가 넘으니 배가 살살 아파오면서 눈이 떠지고, 랄(Lal)은 6시30분에 정확하게 내 방앞으로 온다.
랄에게 내짐을 덜어주었다. 한달반 전의 에베레스트 트레킹때보다는 요령이 생겨서 짐이 줄긴 줄었으나, 11월로 접어든 탓에 옷가지를 줄일 수 없었다. 주로 행동식인 먹을 것을 덜어주었지만 그래도 대략 13-4Kg 정도 되는 것 같다.
아침을 미국식(American breakfast)으로 시켜먹고 7시넘어 출발하였다.
어제 늦게 와서 제대로 못 본 거리는 활기차다. 의외로2층집들로 주욱 연결된 이 마을같은 도시(?)를 지나서도 도로가계속 연결되어 있다. 랄에게 물어보니 수력발전소 건설때문에 쿠디(Khudi, 790m)까지 도로가 있다고 한다.
닭을 잔득 실은 차가 앞을 지나고 있고, 전깃줄이 사방으로 얼기설기 지나간다. 그뒤로먼 하늘에 흰산이 걸쳐져있다.
트레킹의 스타트 치고는 왠지 격이 맞지 않는 느낌이라고 할까...
< 베시사하르의 아침 >
마을의 끝에 있는조그만 가게에서 걸으면서 먹을 생각으로 사과를 산다.
찻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호주에서 온 트레커(7명)들이 산더미 같은 짐을 진 10여명의 포터와 함께 가고 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 네덜란드인 4명과 다시 만나서 히딩크 얘기를 잠깐 하면서 반가와 한다. 이렇게 일단의 트레커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천천히 걸어간다.
길위에는 당나귀똥이 곳곳에 깔려있다. 에베레스트는 야크가 주요 운송수단데 비하여 안나푸르나 지역은 야크 대신 당나귀가 주로 짐을 나른다.
멀리 람중히말(Lamjung Himal, 6932m)이 보이는데 아쉬운 것은 가스가 끼어서 선명하지 않고 뿌옇게 보인다는 것이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안나푸르나 지역에서 찍은 사진은 에베레스트 지역에서 찍은 사진보다 선명도가 떨어진다. 아마도 계절에 따른 기류의 탓이 아닐까 싶다.
쿠디에서 도로가 끝나고 길이 좁아지면서 제대로 된 풍경들이 나타난다.
마르샹디(Marsyangdi)강 뒤로 람중히말이 당당하게 솟아있다.
베시사하르에서 걸어서 2시간이 걸리는 쿠디는 구룽(Gurung)족이 사는 작고 예쁜 마을이다. 구룽족은 티벳계통의 소수민족으로 히말라야의 고지대에 많이 살고 있다. 사과를 한개씩 까먹으면서 쉬어가기에 좋았다.
< 당나귀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쿠디를 지나면서 긴 다리를 건너니 쿠디보다는 조금 더 큰 마을인 불불레(Bhulebhule, 840m)이다. 여기에는 네팔인 체크포인트가 있다.
가이드북에는 여기서 히말출리(Himalchuli, 7893m)를 볼 수 있다고 했지만, 흐려서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히말출리는 높이가 100여미터 차이로 8000미터에서 제외된 난이도 높은 봉우리다. 또한 히말출리는 버섯동자로 불리는 후배가 동계시즌 세계초등을 한 봉우리라서 꼭 보고 싶기도 했다.
불불레를 지나면서 경치가 바뀐다. 천의 얼굴을 한트레킹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인 인상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설산과 들녁과 마을의 조화로움. 황금빛으로 빛나는 추수 직전의 들판 뒤로 하얀색의 설산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그 옆으로 자연스레 생겨난, 적당하게 아담한 좁은 길을 따라걷는다.
트레킹이라는 것이 고도를 높히면서 웅장한 대자연을 보는 기쁨 만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세상과 만나는 접점에서 더욱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다. 또한 그걸 바라보는 마음속 깊이평화로움이 가득 차온다.
랄은 십여미터 앞에서 산을 향하여 천천히 걷고 있고,
밀레의 만종을 연상시키듯 낫가리가 쌓여진 들판에는 아낙네들이 일에 열중이며,
수확한지 얼마되지 않은 옥수수 더미가 설산보다 더 높이 쌓인동네 공터에는 아이들이 바쁘게 노닐고.
주인 모를 계단식 논을 배경으로 이름없는 붉은 꽃이 빛을 발하고 있다.
경허(鏡虛)스님의 유명한 선시(禪詩)중 한구절,
世與靑山何者是
春光無處不開花
세상과 청산은 무엇이 옳은가
봄볕 이르는 곳곳마다 꽃피지 않는 곳이 없구나
과연 세상과 청산은 어느 것이 옳은가?
경허스님의 싯구처럼, 세상과 청산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과 청산의 접점에 참된 길이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앞에 펼쳐진 여러 형태의 길중에서 말이다...
나디(Nagdi, 930m)에서 휴식 겸 점심을 마치고 바훈단다로 향한다.
오후 3시30분에 바훈단다에 도착하였다. 너른 잔디밭이 있는 아주 아름다운 랏지(Superview 랏지)에 여장을 풀고,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한다. 멀리 절벽 밑에 흐르는강은 그 뒤쪽에 보이는 산과 어우러져경치가 매우 좋다.
날이 점점 저물어 가면서 어두워짐에 따라 방으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한다.
밖이 점점 밝아져서 나가보니 보름달이 앞산 위로 휘영청 떠올라 있다. 에베레스트의 눕체 옆구리에서 떠오는 달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어릴적 시골의 고향집 앞에서 뜨는 우리동네 달처럼 생겼다.
저아래 동네 마을엔 외등이 좁다란 골목길과 집들을 비추고 있다.
이 뻣속까지 느껴지는 정겨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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