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30분이 되어 알람이 울리면서 기상한다. 별일 없으면 트레킹동안 무조건 6시반에 기상하기로 랄과 약속을 했다.

전망 좋고 정원이 아름다운 이 랏지에는 트레커가 많이 머물기 때문에, 아침부터 화장실 쟁탈전이 한참이다.

아침으로 티벳 빵을 먹고 출발한다. 어제 같이 묵은 네덜란드인들이 손을 흔들며 나중을 기약한다.

 


<랏지의앞마당 >

랏지에서 내려가는 길은 전망이 탁 트여서 마르샹디 강과 계단식 논의 진수를 볼 수가 있다. 마르샹디 강은 아직 해가 떠오지 않아 물안개가 옅고 푸르게 깔려있고 구불구불하지만 한참을 곧게 뻗어있다.

강의 상류쪽 뒷편으로 큰산이 겹쳐져 보이는 곳부터 협곡이 시작되며, 오늘은 그 협곡 너머에 있는 탈(Tal)까지 가는 것이다. 강을 따라가는 대략 8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다.


 

계단식 논은 바로 밑을 흐르는강에서 부터 100여미터의 경사급한 산기슭까지 올라가 있다. 보통 3모작에서 5모작까지 가능한이 논은 2000미터 고도에 이르기까지 산비탈이면 어디에나 있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랄이 그쪽 포터와 얘기해보더니 한국인들이라고 한다. 반갑게 인사를 해보니, 월간 산에 "악돌이"와 여러 산행기를 연재하는 박영래씨 일행이다.

이 분들은 쏘롱라고개 너머에 있는칼리간다키 강상류의 오지에 위치한 무스탕을 취재차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다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을 당나귀들 틈에서 같이 걷는다. 뒷발질을 당할 염려는 별로없지만, 절벽길을 걸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당나귀 등에 무겁게 올려진 짐들에 걸려 낙상하는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나귀에게 길을 양보할 겸 좀 쉬어간다.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에는 티벳불교의 상징인 룽다가 걸려있고 어김없이 옥수수 더미가 쌓여있다.

 

 

샹제(Syanje, 1100m)를가기위해서는 긴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 조금 전에있는 아주 긴 폭포가 눈길을 끈다.

 


 

샹제부터 자갓(Jagat, 1300m)을 향하는 길은 아침에 본 평평한 강이 이어져 있다.

자갓을 지나면서 천천히 강 옆의 비탈이 급해지고, 협곡이 나타난다. 협곡에 걸쳐져 있는 다리도 인상적이지만, 멀리서 보는 별장같이 생긴 집들도 멋있어 보인다.

앞서 가던 랄이 갑자기 멈추더니조용한 목소리로 이 근처에 마리화나가 많이 있다고 하더니 이스라엘 애들이 몰래 채취해서 많이 피운다고 덧붙인다.

 


 

강은 이제 협곡이 되가고 있고, 맞은 편 계곡에 폭포가 웅장하다.

조그만 마을 뒤로 산능선이 만만치 않게 높아보인다.

 


 

마을 지나자마자 협곡에 접어들면서, 맞은편으로 몇백미터 이상으로 치솟아 오른 벼랑이 보인다.

한 2시간 동안 앞에 있는 경치가 어떻게 변할지 예상 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이리저리 변한다.

 

< 협곡의 시작 >

 


< 임시로 만든 나무다리 >

 

임시로 만든 나무다리를 지나 길은 천천히 오르막으로 바뀐다. 좁은 협곡속에서 답답하게 느껴지는 길을 30여분 오르니 풍경이 확 변한다. 갑자기 앞에 설악산 적벽같은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다. 그 우측 밑으로는 급류에 의해 파인 깊은 계곡이 보이고 길은 바로 그 위쪽에 아스라니 걸쳐져 있다. 길을 넘어가는 사람이 점처럼 보인다.

 

 

 

적벽같은 봉우리를 돌아가니 급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물줄기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물은 없고 물소리만 자욱하다.

오래전에 생긴 산사태로 인해 물이 그 밑으로 흐른다고 하는데, 그래도 기묘하다.

급경사를 오르니다시 한번 풍경이 바뀐다.

정말 자연은 오묘할 따름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언제 있었냐는 듯 협곡은 사라지고폭 넓은 강줄기와 삼각주와 모래(자갈)톱이 나타나니 말이다.


 

 

한참을 앞서가서 쉬고 있던 랄이 웃으면서 반긴다. 여기서부터 행정구역이 바뀌어 마낭(Manang)지역이란다.

그리고 탈(Tal, 1700m)에 도착한 것이다.

 



 

탈은 네팔말로 호수라는 뜻이다. 예전에 이 자리에 호수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터벅터벅 강을 거슬러 걷는 길은 어제에 이어 또다시 정겹고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강을 따라 흐르는 길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오래전 우리나라 시골길이 이렇게 생겼었을 것이다. 길이란 길이 모두 포장되어 그 주인이 차로 바뀌어버리기 전의 모습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나는 다시 한번 길의 주인이 되어서 큰 길의 가운데를 당당하게 걷는다.

목에 힘을 주고, 동네 입구에 만든 개선문을 통과하는 나는 이제 다시 주인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마을에있는체크포인트에 신고를 하고, 큰 폭포 밑에 있는 랏지에 여장을 풀었다.

뒤로는 긴 실폭포가 있고,앞쪽은 꽃 단장을 한 아름다운 랏지다. 그래서인지 이름도 파라다이스 랏지다.

 

< 파라다이스 랏지 >

 

짐을 풀고 내려오니 호주인 2명이 럼주를 권하면서 반긴다. 나는 네팔술인 럭시로 화답한다.

8시간을 빠듯하게 걸어서 그런지, 네팔 토속주의 힘인지 모르겠지만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기에 좋았다.

Posted by 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