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경 잠에서 깨어 볼일을 보러 나왔다. 

떠오른 달이 정말 교교하게 빛나고, 바로 앞에는 눕체(Nuptse, 7864M)가 버티고 있다.

달 주위에 달무리가 보인다. 날씨가 흐릴 것 같다고 예감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깨어보니 구름이 잔뜩 껴있다.


나를 비롯하여 R씨, 가렛과 람1, 시멀과 람2 등 6명은 오늘 그 유명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가기로 하고 8시30분경 출발하였다.

고도가 5000미터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빙하 때문인지 호수가 있다. 고락세프호수(Gorak Shep Tso)이다.


지도를 보니 오늘 가는 길은 쿰부빙하 위로 나있는 길이라서 쉽지 않을 것 같다.

랏지를 나와 10여분 걸으니 우측에 웅장한 눕체가 보이고 길은 생각보다 편안하다.



< EBC 가는 길 - 구름이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눕체가 서있다 >


좀 걷다 보니 에베레스트를 오르다 숨진 산악인들을 추모하는 커다란 바위가 앞에 보인다.



< Memorials to died on Everest >


여기를 넘어서면서 드디어 쿰부 빙하가보인다. 빙하 옆의 길로 조금 가다 보니 한참 아래 보이는 빙하위로 길이 나있다.

쿰부빙하다. 한 2시간 갔을까, EBC에 볼 것이 없으니 그냥 돌아가자고 가렛의 가이드인 람2가 제안한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EBC를 안 가볼 수 없다. 그네들이 돌아가더라도, 나는 무조건 갈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시멀이 EBC 까지 강행하기로 결정한다.


정말 힘든 빙하지대를 걷고 있다. 15킬로의 짐을 메고 몇일 간의 강행군을 하여선지, 5000미터 넘는 길은 정말 쉽지않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잠깐 구름이 걷히면서 눕체가 시원하게 드러나서 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 구름이 걷히면서 더 잘 보이는 눕체 >


그리고 저멀리 EBC가 보인다. EBC는 빙하의 한 가운데 있다.



< 멀리 산밑에 있는 눈밭처럼 보이는 곳이 EBC - 그 뒤로 아이스폴이 있다 >


그것도 잠시, 다시 구름으로 뒤덮혀가고 있다.


< 쿰부빙하 - 마치 상어가 아가리를 검게 벌린듯 한 모습이 무섭고도 황량해 보인다 >


빙하 우측 위로 난길에 조그맣게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 멀리 텐트가 울긋불긋 보이는데 가도 가도 가까이 오지는 않는다. 그러길 1시간쯤... EBC를 앞두고

갑자기 헬리콥터의 잔해가 나타났다.



< EBC 근처에 추락해있는 헬기의 잔해 - 뒤로 아이스폴이 보인다 >


2003년 5월에 추락하여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하였다고 한다...

빙하와의 사투 끝에 드디어 EBC에 도착하였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에 놀란다. 물론 성수기가 아니라서 에베레스트 등정팀들이 별로 없다고 하지만서도...


<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64M)와 아이스 폴(Ice Fall) >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위로 수많은 크레바스(crevasse)와 빙폭을 내부에 품고 있는 아이스폴이 보인다.

과거 얼마나 많은 산악인들이 여길 오르다 희생이 되었던가...


그러나 트레커들은 EBC위로는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입산료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입산료는 노멀루트(사우스콜)로 가는 경우 기본 인원 5명에 70,000달러(8천만원 정도)라고 한다.

몰래 가다가 걸리면 입산료도 내고, 잡혀서 감방간다고 한다. 당연히 네팔의 감독관이 상주하고 있다.



<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에서 본 아이스폴(Ice Fall) 파노라마 >


아이러니가 하나 더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에서는 에베레스트가 보이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에베레스트를 보려고 했던 소박한 꿈이 사라졌다. 구름이 껴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원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EBC 가는 것을 상징적인 의미로 생각하는 것이다.

에베레스트의 본 모습은 고락세프 바로 뒤의 칼라파타르에서만 제대로 보인다.


4시간 걸려 도착한 EBC에서 실망에 겨운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돌아온다. 한참을 앞서가는데 뒤에 오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보니 시멀이 쓰러져서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고소증으로 오다가 쓰러진 것이다.

마침 트레킹을 같이 하던 캐나다 의사가 길가에 눕힌 후 여러 테스트를 한후, 고소증이니 최대한 빨리 내려가야

한다고 진단을 한다. 뇌에 물이 찼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람1과 람2가 번갈아 가면서 업고 고락세프의 랏지로

향하였다. 고소증이란게 이렇듯 무섭다. 시멀은 4000미터 넘어서 부터 고소증세가 약하게 왔는데 그것이 누적이

되어 EBC에서 발병한 듯하다.


돌아오는 길은 더욱 어려웠다. 날씨는 흐려서 우중충하고, 옆에는 황량한 빙하가 펼쳐져 있고, 같이 다니던 일행인

시멀은 쓰러져서 저 멀리 업혀가고 있다. 체력도 바닥을 치고 있어서 여러모로 힘들었다. 나중에는 발걸음 하나

띠는 것도 힘들다.


하긴 여행이 항상 즐겁고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 트레킹 시작후 매일 좋은 경치를 봐서 기쁘고 좋은 만큼

낯설고 불편하고,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속에 육체적으로도 고통을 받아왔으니까...

모든 것에는 그 댓가가 따르는 법이다.



< EBC에서 고락세프로 돌아오는 길 - 흐리고 황량한 만큼이나 가슴이 무겁다. 저멀리 트레커 홀로 걸어가듯이... >


머물고 있는 랏지에 제일 늦게 도착하니, 시멀이 전문포터의 등에 업혀서 출발준비를 하고 있다. 전문포터의 눈 빛이 남다르다.

물론 시멀의 가이드 겸 포터인 람1은 짐을 메기는 하지만 전문가는 아니다. 전문가란 50-60킬로를 메고 보통 사람보다

더 잘걷는 사람이다. 적어도 네팔에선 그렇다. 들은 얘기지만, 100킬로를 메고 산을 오르는 포터도 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오후 4시에 출발한 시멀을 업은 전문포터는 6시간만에 텡보체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그 거리는 일반인들이 보통 10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이다.


시멀을 보내고 랏지안으로 들어가니,10여명의 한국인들이 보인다. 반가웠다.

네팔에 있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 :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대원들이다.

2년동안 세계4대 빈국중 하나인 네팔에서 보람찬 고생을 하고 있는 자랑스런 한국인들이다. 의료봉사나

컴퓨터관련 봉사를 한다고 한다. 네팔의 국경일 휴가라서 함께 에베레스트까지 오게 되었다고...

비장의 소장품인 김을 반찬으로 하고, 현지에서 대원들이 만든 김치를 맛있게 곁들여 저녁을 같이 먹었다.

재미있게 동포들과 얘기를 하니 시간이 훌쩍 지난다. 내일은 에베레스트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전망대인

칼라파타르를 다 같이 오르기로 하였다.

밖에는 조금씩 날리던 눈발이 점점 굵어지며 눈이 쌓여가고 있다.



Posted by 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