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들은 불현듯 떠올라서 순간순간 상념에 잠기게 한다.
고개들어 정신 차려보면 세월의 빠름에 놀라면서, 우리가 겪은 과거의 경험을 반추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지난 것에 대한 그리움에 허탈해하기도 하며, 가끔은 현재를 판가름하는 잣대로 삼기도 한다.
그런 기억과경험은 어디에 어떻게 숨어있었던 것일까?
10여년 전의 북한산 만경대가 생각난다. 지금은 출입제한 구역이긴 하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면, 릿지 초보들과함께 한 그날의 산행은 말 그대로 만용이었다.
특히 피아노 바위 부근에서 그 겁먹은 얼굴들을 보면서 얼마나 후회를 했었던지...
30분 후 모두는 무사히 만경대로부터 내려섰다.
그리고 잠시 후 모두는 감격으로 들떠있었다.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안도감이 교차한 잊지못할 경험이었던 것이다.
몇몇은 생과 사를 오고갔다고도 했다.
릿지에서 자기 몸을 추스릴줄 아는 릿지꾼들에겐 별다른 경험이 아니겠지만,
한몸 추스리기에 미천한 존재들이 거친 바위에서 겪은 그 떨림은 몸의 구석구석 남아있을 터이다.
그리고 이런 고통, 두려움, 환희의 기억들은 몸에 기생하여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사실 오래전 부터 K2를 꿈꾸어왔다.
정상에 오르는 등정이 아니라 먼 발치에서나마 수직으로 솟은 '산의 제왕'을 직접 보고싶었다.
근 1달에 걸친 K2 트레킹과 파키스탄에서의 여정은 그 경험이 가진 동전의 양면인 고통과 기쁨으로 기억된다.
또한 이런 경험은 좋고 싫음의 가치에 관계없이 내 속 깊이 각인되어있다. 그 후유증과 더불어...
그래서 난 이 여행을 몸의 여행 - 몸이 한 지난(至難)한 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설탕이 녹아야만 한잔의 설탕물이 될 수 있듯이,
1년여 전의 여행은 머리 뿐 아니라 몸 전체로 녹아버리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 아주 천천히 몸 속으로 들어가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