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의 바람 속에 펄럭이는 푸른 룽다
글: 신영철 (소설가)
이 책에는 부부가 함께 걸었던 히말라야가, 맑은 유리창을 통 해 바라보는 것처럼 따듯하게 투영 된다. 부부는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히말라야 산록을 걸으며 깊은 묵상을 한다. 자고 깨면 걷고 또 걷는 행정에서 '자고 깨는 짧은 꿈과, 나고 죽는 긴 꿈'에 대한 사유를 한다.
체력의 한계치까지 자신의 몸을 혹사하면서 이들이 얻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 구도자처럼 희박한 공기 속을 걸으며, 만다라처럼 피어나 하얀 화엄의 봉우리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이들 부부는 자연처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찍었다. 용서와 화해를 화두처럼 가슴에 묻은 감성 필터를 지닌 사진은 그러므로 따듯하다.
이번 가을, 티베트를 거쳐 네팔로 넘어와 카트만두에서 짐을 풀자 제일 먼저 찾은 곳이 타멜의 한국음식점 ‘소풍’이었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피로를 풀기 위해 그곳을 찾은 건 아니었다. 이를테면, 그건 십년이 넘어 길들여진 일종의 버릇이었다.
외국인 여행자들이 몰리는 타멜 거리는 가을 시즌을 맞았는데도 한가했다. 네팔의 정치 적 상황이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소풍’ 역시 한가했다. 안면이 있는 여 종업원이 수줍은 듯 인사를 했다. 밥을 청했고, 오래지 않아 음식이 나왔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정명경이라는 이름 보다, 수자타(修自他)라는 불명으로 불렸던 그녀 때문이었다.
금방이라도 “오셨어요”라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가 주방에서 나올 것만 같았다. 부처님께 우유죽을 공양 올렸던 수자타처럼 그녀는 언제나 허기진 우리에게 보살이었다. 김홍성 시인과 밤 새 벌렸던 술자리는, 그녀의 노래가 있으므로 늘 행복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없다. 이곳에 없는 것이 아니라 지구별에, 그녀는 없다. 한 줄기 연기로 변해, 우리 곁을 떠나는 현장에 있었으므로, 나는 그 사실을 잘 안다. 한없이 쓸쓸해졌다. 어디선가 그녀의 밝은 웃음이, 그녀에게 잘 어울렸던 푸른 룽다 노래 소리가 이명처럼 들렸다.
The water is wide라는 곡에 김홍성 시인이 노랫말을 붙이고, 정명경이 부른 푸른 룽다는 그래서 더욱 절절하다.
푸른 룽다 펄럭이는 날/ 내 마음도 나부끼네/ 하늘 높이 새들은 날고/ 흰 구름은 흘러가네.// 사랑하는 나의 여인아/ 잠시 나를 보내 주오/ 순한 미소 지으면서/ 나의 배낭 꾸려 주오.// 기다리는 그대가 있어/ 돌아오는 나도 있네/ 푸른 룽다 펄럭이는 날/ 바람처럼 돌아오네.
이 간단한 노랫말에 감동한 건 아니다. 정명경이 불렀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와 인연이 되어 네팔을 드나 든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기억한다. 그들 역시 이 노래는 정명경의 노래라는데 동의한다. 낮은 음색 그리고 기교 없는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소박한 감동이 살아 있었다. 매번 들어도 매번 감동했던 이 노래처럼 그녀의 영혼은 푸른 룽다 펄럭이는 히말라야를 떠가고 있을까.
어느 부부들처럼 이들 역시 그렇게 웃고 분노하고 실없이 낄낄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암 투병 1 년 4 개월은, 이들에게 이별 연습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었을 게다. 이들 부부는 독실한 불교도였다. 그들이 믿는 부처님은 힘이 세다. 부처님의 말씀으로 지난했던 방랑의 세월을 견디어냈듯, 그 말씀으로 한발 한발 다가서는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했다.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때 그녀를 본 적이 있다. 맑게 웃던 얼굴에서 담담히 운명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아우라'를 봤고, 그 힘은 그녀가 한시도 놓지 않았던 염주에서 나온 것을 알았다. 그녀는 시인에게, 곧 세상을 버릴 자신을 지켜 볼 수 있게 격려했다. 사후 처리 방법과 홀로 버틸 수 있는 지혜를 나누었다.
시인이 아내를 보낸 산정호수 근처에는 울음산이 있다. 그녀의 부음을 듣고 달려 간 그 울음산에서는 네팔에서처럼 뻐꾸기가 울었다. 운 게 뻐꾸기뿐일까. 정명경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참 많이 울었다. 사십구재에는 그녀의 푸른 룽다 노래가 울렸다. 녹음테이프 안에서 그녀는 건강했고, 밝았으며 예전처럼 우리 곁에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가거들랑 아주 가오/ 거짓 맹세 하지 말고/ 아픈 추억 거둬 가오// 기다렸던 푸른 하늘/ 하얀 구름 흘러가도/ 푸른 룽다 어디 갔나/ 새들만이 날고 있네// 사랑 했던 나의 사람은/ 흰 산 너머 언덕 위에/ 배낭 메고 누웠으리/ 푸른 룽다 바라보며/ 하.늘.가.득.푸.른.룽.다…….
인도 철학에서 말하는 ‘인드라의 그물’은 그래서 사실적이다. 사바세계의 실상은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고 그 이음새마다 구슬이 있는데, 그 구슬은 서로 비추고 비추어지는 관계에 있다. 이것과 저것이 소통하므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혼자라는 아상은 없다.
인드라의 세계는 넓은 것뿐 아니라 깊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 그리고 바람소리 물소리까지 서로 교류한다. 언제부터 수자타와 내 삶이 인(因)과 연(緣)이라는 날줄과 씨줄의 인드라의 그물로 얽혀 졌던가.
이제 세상에는 없지만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 할 그녀와 이 책을 통하여 소통한다. 룽다 흔들었던 바람처럼, 이제 하늘나라로 돌아 간 그녀에게, 남편과 함께 걷던 히말라야는 없다.
그러나 책을 펼치면 그녀는 홀연히 살아난다. 그녀가 걷던 길을 따라 가다가, 힘들 때면 잠시 멈춰 그녀의 눈으로 찍은 사진을 본다. 하늘 가득, 만다라처럼 펄럭이는 룽다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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