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 2일째.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까지 묵은 에베레스트 앞의 고락세프 보다 더 춥다. 거의 고도차가 1000미터가 나는데도 말이다...
3인실이라 방도 큰데다 창문도 크고, 커텐도 안하고, 혼자 자서 그런가 보다.
침대에 누워 창문으로 하얀산이 보인다. 물휴지로 대충 세수를 하고 짐싸서 식당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할머니와 딸의 반짝거리는 눈이 아름답다.
< 네팔인보다는 티벳인에 가까운 네팔 할머니와 손녀>
프렌치토스트를 시켜먹고 밖으로 나가니 위령탑이 있다. 그동안 히말라야에서 숨진 산악인에 대한 추모탑이다.
한국인을 찾아보니 많이 보인다. 모두다 South Korea로 기록되어 있다. 나중에 통일되면 이러한 국명표기도 기념이 되지 않을까?
트레킹하다 보면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Korean 이라고 하면 South냐 North냐 물어보고,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것에 데해여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독일인과 미국인들이 많이 물어보는데, 특히 독일인들이 관심이 많다. 트레킹하는 사람들은 양심도 있고 수준도 높은 편이다. 그래서 다들 부시를 욕하고 다니며, 반전(No War)을 원한다. 물론 이스라엘 애들은 빼고...
8시경 남체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 하룻밤 지낸 페리체와 그 뒤에 보이는 Nagartsang 피크(5083M) >
앞에는 설산들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다.
이 길은 처음 가는 길이다. 남체에서 고쿄로 빠진후 촐라패스를 넘어서 에베레스트로 갔기 때문이다.
원래 에베레스트까지 가장 빨리 가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남체가는 이길은 "아마다블람과 계곡의 조화로운 길"로 칭하고 싶다. 너무나 아름답다.
트레킹 이틀째 처음 보았던 설산이 바로 참세르쿠(Thamserku, 6618M)였는데 바로 그 봉우리다. 앞은 참세르쿠,좌측 계곡 옆 위로는 바로 아마다블람(Ama Dablam, 6814M)이 솟아있다.
< 계곡 앞쪽으로 캉테가(Kang Tega)와 참세르쿠(Thamserku) 피크가 보인다 >
반면 뒤를 돌아보면 그동안 한번도 제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로체(Lhotse, 8516M)와 로체샤르(Lhotse Shar, 8400M)가 보인다. 특히 멀리서도 보이는 로체남벽(Lhotse South Face)는 고도 5,000미터인 베이스캠프에서 거의 수직으로 3,500m나 솟아 있는 세계최고의 난벽이라고 한다. (1987년,8,000m급 14개봉을 세계에서 2번째로 오른 쿠쿠츠카가 거의 정상부근에서 추락사 한 히말라야 최난의 등반대상 )
< 멀리서도 압도하는 듯한로체의 위용 >
로체를 가기위해서는 페리체에서 딩보체를 거쳐 츄쿵(Chukhung)을 지나서 간다.
<로체와 로체에서 뻗은 눕체 능선 - 에베레스트는 눕체 능선에 가려서 아직 보이지 않는다 >
계곡 옆의 길을 계속 걸으니 남체 바로 위에있는 꽝데(Kongde, 6187M)가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의 목적지가 바로 거긴데 가깝게 보이면서도 멀다.
< 계곡위로 보이는 꽝데피크 (Kongde, 6187M) >
꽝데피크는 보통 남체에서 티벳가는 길인 낭파라(Nangpa La) 옆에 있는 피크다. 트레커들이 보통 고소 적응차 Thame로 많이 가는 데 그 곳에서 가장 잘 보이는 피크이다.
< 팡보체에서 조망한 꽝데피크의 와이드한 모습 >
이제 다시 히말라야 최고의 미봉인 아마다블람으로 돌아가 보자.
아마다블람은 촐라패스를 넘으면서 구름속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였으며, 고락세프에서 텡보체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잘 보이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까이서 보면 앞의 봉우리와 뒷봉우리 두 개로 보이는데, 바로 앞에 있는 검은색 직벽 암벽에 절묘하게 불상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인연이 있는 자는 볼 것이라 했으니...
< 아마다블람 앞 봉우리의 눈과 암각으로 이루어진 불상 >
아마다블람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느 배경과도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마을이건, 사람이건, 탑이면 탑, 앞에서 보나 옆,뒤에서 보나 어디에서나 빛을 발한다.
< 트레커, 마을, 로체 그리고 아마다블람 >
< 스투파(stupa, 탑) 뒤로 보이는 아마다블람 불상 >
< 구비 구비 넘어가는 길위로도 빛난다 >
아름다운 아마다블람을 뒤로 하면서 텡보체(Tengboche)를 향하여 간다. 철이 늦가을인지라 4000미터 위로는 푸른 빛이 안보였는데, 길 주변은 이제 어느새 녹색 빛이 난다. 물론 4500미터가 넘으면 사시사철 언제나 흙빛일 뿐이다. 그 고도에는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 텡보체 가는 길에 넘어야 하는 다리 >
다리가 나타났다. 옛날 다리 위에 새다리를 만들어서 이채로왔다. 다리 건너부터고갯길을 1시간 걸으니 텡보체가 나온다. 12시다.
텡보체는 정말로 평화롭고 아름답고 따뜻한 곳이었다. 큰 곰파(사원)가 있는데 시간이 없어 들어가지도 못한다.
< 평화로운 텡보체 전경 >
< 텡보체의 곰파 앞에서 >
텡보체가 멋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로체와 눕체,아마다블람 뿐만이 아니라 에베레스트도 보인다는 것이다.
눕체능선에 가려져 있던 에베레스트가 멀리서 보니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정상부의 일부만 보이는 것이다. 그래도 좋다. 1타 4피다. 아니 1견 4봉이다.
< 텡보체에서 바라본 눕체일부, 에베레스트, 로체, 아마다블람 >
남체까지 시간을 물으니 3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예상대로라면 앞으로 2시간 정도 걸려야 하는데...
현재의 속도라면 남체까지 4시간이상 걸린다고 봐야 한다. 시간이 없다. 해진 후에 도착하면 안되니까...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서 행동식인 쵸코바등으로 먹기로 했다.
오늘이 산에 들어온지 14박 15일째다. 사실 많이 지쳐있었다.
저멀리 남체가 있는 곳이 보인다. 바로 꽝데(Kongde)피크 앞인 것이다.
< 텡보체에서 남체로 뻗은 끝없어 보이는 길 >
텡보체에서 출발하는 길은 처음부터 내리막길이다. 끝없이 내려간다.이런 급경사길로 무거운 짐을 진 야크들 올라오고 있다. 짐승이지만 안 돼보인다.
< 무거운 짐을 싣고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는 야크들 >
내려오는 길이라 힘이 덜 들었는데,이제 반대로 오르막 길이다. 한참을 올라가니 고쿄로 가는 길과 만나는 길이다. 드디어 갈림길에 도착한 것이다. Sanasa에 도착하여 쵸코바와 레몬티를 점심 아닌 점심으로 먹었다. 3시간만에 휴식을 취한 것이다. Sanasa에서 남체까지는 1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 남체가는 길은 무지하게 멀다 >
그나마 평탄한 길이다. 날은 서서히 구름과 안개가 몰려오고 있다. 서양여인 3명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걷는다. 몸이 천근 같지만 경주하듯이 가니까 갈만하다.
드디어 남체가 보인다. 예상보다 더 걸려서 8시간이상 걸린 것 같다. 남체 입구에 티벳불교 비구니가 시주를 권해서 110루피를 시주하였다.
먼저 묵었던 칼라파타르 랏지에 도착하니 방이 없다고 한다. 맡겨두었던 짐을 찾아서 다른 랏지로 가려고 하는데 하루 먼저 출발한 가렛과 람2가 나타났다. 너무 반가왔다. 내가 2일동안 온길을 3일동안 와서 여기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들이 먼저 내려가서 못 본 칼라파타르에서의 에베레스트 모습을 한참동안 자랑했다.
이래저래 남체는 정겹고,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미리 항공권을 예약해야 되므로 93달러에 끊고 오랫만에 집에 전화도 하였다.
다른 랏지로 가서 방을 잡아서 짐을 푼 후에, 무사히 남체에 도착한 기념으로 조그만 바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트레킹 이후 처음 마시는 술이었다. 그리고 거금을 쐈다. 무려 2000루피(33000원 정도) - 한국 돈으로는 얼마 안되지만, 네팔에서의 체감 액수는 엄청나다.
바에서 맥주를 먹으며 음악을 듣는데, 귀가 안들리는 가렛이 어떻게 음악을 듣는지 궁금했다. 물어보니 자기는 스피커의 울림으로 몸에서 느껴지는 진동을 통하여 음악을 듣는단다.자기가 좋아하는 뮤직비디오를 3번을 봤었는데 감동적이었다고 해서, 그 음악을 찾아서 CD로 들으며 즐거워 하였다. 신기하면서도, 장애를 딛고 일어선 가렛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까지 무사히 다녀온 것을 자축을 한 후, 피곤에 찌든 몸을 이끌고 들어가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