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증에 시달리다 보니 당연히 잠을 제대로 잤겠는가?

밤새 한잠도 못 잔 것 같고 머리는 띵하지만, 아침이면 기계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눈 떠보니 6시20분.


히말라야의 하루는 또 시작이다. 보약이 따로 없다.

왜냐? 하라는 거 다 하고 하지말라는 거 안하니까...

담배 - 끊은지 1년째, 술 - 고소증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해서 겨우 참고 있음, 운동 - 규칙적으로 몇일 째 쌩노동 중, 음식 - 고기(없어서) 빼고 채식 위주... 몸에서 사리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부처님께서도 이 지역 출신이시라니까... ㅎㅎ


일어나서 대충 셀파스튜(수제비의 일종)를 먹고 화장실을 가니, 4000M 넘은 징표를 알리듯 푸세식으로 멋지게 치장되어 있다. 네팔은 인도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침대는 기본, 화장실도 수세식이다. 드뎌 문명을 벗어난 기분 +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에, 현대식을 벗어난 신고(?)를 나름대로 치루었다.



< 야간산행 끝에 하루밤 묵은 초오유 랏지 >


이제 출발이다.

가렛, 시멀, 람1, 람2, R씨의 힘찬 화이팅소리를 들으며, 4000M의 고지를 넘어서 힘차게 간다.



< 마체르모를 향하여 출발 - 왼쪽부터 시멀, R씨, 가렛 >


아침부터 날씨가 좋아 멀리 설산이 보이고, 그사이로 구름이 휙휙 지나가고 있다. 그제,어제 이틀동안 내내 구름 속을 헤매인 우리는 좋은 날씨에 아주 기뻐한다.그것도 잠시, 조금 지나니사방이 구름으로 둘러싸여 조여온다. 결국 아무 것도 안보인다.그러나 가다보니 예쁜 야생화도 피어있고, 풀밭이 정감이 간다. 고소증만 아니라면 하루 종일 내내 걷고 싶은 풀밭길이다...



< 금강초롱류의 야생화 >


점심 식사 예정지인 루자(Luza, 4360M)로 향하는데, 시멀과 람1 이 멀리 길 옆에 앉아 있다. 살펴보니, 시멀이 고소증으로 인해 가다가 멈춘 것이다. 시멀은 워낙 잘 걸어서 걱정을 안했었는데... 고소증은 남녀노소, 나이와 체력 불문이라더니... 시멀을 뒤로 하고 R씨와 나는 부지런히 걷는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도 뒷골이 땡기고 아픈게 완전히 전날 술 많이 먹은 다음날 같다. 또 기진맥진 끝에 루자의 khnatega view 랏지에서 달밧을 먹었다.

조금 기다리니 시멀과 Ram1이 도착. 미리 도착했을 가렛과 Ram2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랏지의 한 창문에 붙어있는 한글이 반갑다. 한국대학산악연맹의 2003년 훙치원정대가 남겨놓은 스티커이다. 나중에 보니 아쉽게도 일본에 초등을 6일 차이로 놓쳤다고 한다.



< 훙치 원정대 - 밥먹다 발견한 반가운 한글 >


말 나온 김에 인터넷의 힘을 빌어 잠깐 소개하자면...


"훙치(6666m) 는 네팔 정부가 2001년 12월20일 103개 봉우리 개방에 앞서 2001년 4월10일 로체 중앙봉(8,413m)을 포함해 개방한 9개 봉 중 하나다.

에베레스트(8,848m)와 초오유(8,201m)를 연결하며, 네팔과 중국 티벳자치구의 국경을 이루는 주능선 상에 있다. 초오유 남동쪽 12㎞, 에베레스트 서북서쪽 17km, 고줌바 빙하 동측에 위치한다. 쿰부히말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남체에서 고쿄를 거쳐 진입한다."



< 펌 - 훙치를 오르는 한국대원들, 왼쪽봉이 정상이라고 함 >


점심 식사후 마체르모를 향한다. 길은 멀지 않으나, 오를수록 마음은 위축된다. 거기다 능선은 평탄하지 않고 점점 경사를 더하고 있다. 능선위 꼭데기에서 누군가 손을 흔든다. 가서 보니 점심 때 보이지 않은 가렛과 람1이 마중을 나온 것이다. 국경을 뛰어넘는 동료애를 느낀다. 가렛의 가이드 람1은 고소증으로 고생하는 시멀의 짐을 대신 메고 간다. 3시경 랏지(트레커스 랏지)에 도착하였다. 랏지 마당이 마치 전원 마을 같이 풀밭으로 이루어져있고 야크(소의 일종)가 평안하게 풀을 뜯고 있다. 유럽인들도 많이 보인다.

나름대로 넓은 대청에 모여서 앞으로의 일정을 또 다시 협의하고 있다.



< 랏지의 대청에서 - 좌측부터 람1, 람2, 중앙의 두명은 다른팀 포터, 시멀, 가렛(누워있음) >


랏지의 대청은 식사를 해결하는 곳이다. 대부분 밤에는 포터나 가이드가 자기도 한다. 난방은 야크의 배설물을 말려서 난로에 땐다. 난로는 위 사진에 보이듯이 옛날 우리나라 학교의 난로와 똑같이 생겼다. 트레커가 자는 곳은 조그만 방으로서 난방이 되지 않고 2평 정도의 공간에 조그만 침대가 2개 놓여있다. 물론 1인실도 있다. 방이지만 방이 아니다. 랏지 안에는 전기가 들어온다. 태양열 집진판을 설치해서 충전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낮에는 햇빛이 좋다면 더운 물로 목욕을 할 수 있다. 보통 밤 9시경 소등을 한다. 당근 냉장고는 없다.



< 태양능광...어쩌구저쩌구하는 변압기와 그 옆에 고이 모셔져 자물쇠로 잠겨있는 맥주님과 콜라님이 보인다 >


시멀은 고소증으로 아주 고생이 많다.

물론 나도 나름대로 고생하고 있다.


< 랏지 밖으로 보이는 구름과 설산 >



Posted by 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