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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5.03 인공지능(AI)은 불성(佛性)을 가질 수 있는가?

 

  2016년 알파고의 바둑 제패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인간을 지배하는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이른바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강한(strong) AI의 등장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 같은 SF 영화를 통해 강한 AI에 대해서 익숙해져 있다. 영화 속 디스토피아에서 AI는 인간을 살육하고 심지어 에너지원으로 쓰기까지 한다. 앨런 머스크나 빌 게이츠는 강한 AI의 출현을 당연시하면서 적어도 2050년 이전에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최근 출현 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이들도 있다. 강한 AI를 뛰어넘는 초지능(super intelligence)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강한 AI가 최종 진화한 궁극의 지능을 말한다.

  과학계의 기술적 예측 말고도 AI에 대해 종교적, 철학적, 윤리적 접근을 할 수도 있다. 불교계에서는 AI가 인간과 유사한 지성 혹은 지능을 갖는다면 불교의 궁극적 지향점인 깨달음에 대한 논의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도 있다.

  2012년 개봉한 국내 SF 영화 “천상의 피조물”에서는 인공지능 로봇이 깨달음을 얻어 설법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로봇이 깨달음을 얻는다는 특이한 설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었다.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긴 하지만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상정된 로봇이 깨달았다는 배경에는 불교만의 독특한 교리가 있다.

 

 

영화 <천상의 피조물> 중 한장면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라고 설한다. 인간은 물론 동물에도 불성이 있다는 교리는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 불교에서 인간은 무시(無始) 이래로 육도(六道) 윤회를 하는 중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기물의 하드웨어로 이루어진 AI가 과연 불성을 가질 수 있을까. 불교 경론에 근거해서 답변을 하자면 불가능하다. 무기물은 유정(有情)이 아닌 무정물(無情物)이기 때문이다. AI를 탑재한 하드웨어의 주재료는 모래에서 추출한 실리콘으로 당연히 무기물에 속한다. 불교에서 무기물은 윤회하는 유정과는 달리 기세간(器世間)을 이루는 요소에 불과하다.

  무정물과 유정을 구분하는 불교의 교설은 과학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45억년 지구 역사에서 유기물이 갑자기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과학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이 무기물을 합성하여 유기물을 만드는 실험을 해왔음에도 그 과정이 명확하지 않다. 지구 역사에 홀연히 등장한 유기물의 덩어리들이 단세포가 되고, 다세포가 되면서 식물과 동물로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 끝에 지능을 가진 인류가 등장한다. 과학자들은 30억년의 진화의 과정을 통해 무기물-유기물-단세포-다세포-고등 식물과 동물이 등장했다고 보고 있으며 현재의 인간이 진화의 끝단에 위치한다. 

  AI가 불성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무기물(무정물)이 과연 생명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전혀 다르면서도 비슷한 맥락의 문제이다. 적어도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으로 한정해서 논할 때 그러하며 여기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불성 여부에 대한 논의에는 필연적으로 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 특징은 의식과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동물에도 의식과 지능이 있지만, 그 수준은 인간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동물과 인간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인간은 보다 진화된 의식을 가지면서 자기를 인식한다(self awareness)는 점이다. 추상적 표현이 가능한 고등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도 인간만이 가진 특징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내부에 다른 동물과 동일한 세포와 생화학적 메커니즘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만 고등 의식을 가진 동물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AI는 모두 약한(weak) 인공지능에 속한다. 인간처럼 사고하고, 의식하고, 목표를 갖고, 감각을 느끼고, 자기 인식을 갖는 강한 AI의 출현은 아직 요원하다. 알파고가 바둑에 뛰어나다 해도 동시에 체스를 두거나 의료 진료를 할 수 없다. 반면 인간은 바둑을 두는 동시에 체스를 둘 수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함께 처리할 수 있다.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강한 AI의 등장에는 여러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기술적 필요조건의 충족 외에도 환경과 교류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인식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AI 스스로 자신의 목표와 의도(intention)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해서 목표를 계획하고, 질문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역사는 인간 스스로 내놓은 질문과 그 대답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와 사물에 대한 물음과 대답이 과학기술을 지금의 모습으로 진보시켰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 자신이 행하는 스스로에 대한 재귀적 질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왜 우리는 유한한 존재인가? 와 같은 철학적 질문은 삶의 목표와 의도를 재조정한다. 언젠가 강한 AI가 출현한다면 AI 스스로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AI가 스스로를 인식한 후, 세계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자신의 목표와 의도를 명확히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물음을 던지는 의미의 의미를 알고자 할까?

  이 질문들을 하는 이유가 AI에 인간중심 세계관을 일방적으로 투사하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AI가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을 것인지, 윤리성이 있을는지, 불성이 있을는지를 논하는 것은, AI의 가능성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불성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은 아닐까.

 

  미래에 등장할 강한 AI에게 과연 불성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적어도 AI가 불성을 가지려면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품고, 조주화상의 ‘무(無)’자 화두 정도는 풀어야하지 않을까 라고.

 

한 스님이 조주화상에게 묻는다.

“개(狗子)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가 말한다.

“없다(無).”

 

- 무문관(無門關)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

 

조주구자(趙州狗子)

 

* 이 글은 "법의 향기" 2022년 4월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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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