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오늘은 쿠바의 안무가 로사리오와 만나기로 한 날이다.
우리는 오후 1시 30분 지하철 안국역에서 만나 함께 육조사로 갔다.
주간 현대불교신문의 기자가 와 있었다.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마주 앉았다.
내가 통역을 했다. 스님은 뭐든지 물어보라고 하였다.
50대 초반의 여성인 로사리오는 단도직입으로 질문을 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의 [현대불교] 기사로 대신한다.
[쿠바의 무용수가 육조사(六祖寺)를 찾은 까닭은?]
"한국의 선사 뵙고 싶었어요."
제7회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 서울을 방문한 세계적 창작무용가
로사리오 까르데나스(52·단사 꼼비나또리아단장).
그의 공연작품인 ‘오우로보로스(Ouroboros:자신의 꼬리를 무는 뱀을 가리키는 표현)’는 불교와
너무나 닮아 있다. 이 작품내용에서 뱀은 새롭게 변화하기 위해 자기를 스스로 삼켜 버린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신을 크게 한번 죽여라’는 말의 또 다른 해석인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불교에서 말하는 ‘선(禪)’에 대해서 엄청난 궁금증이 발동했다는 로사리오.
그는 “선불교(禪佛敎)의 나라인 한국에 가서 꼭 한번 선지식을 만나 선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며
“마침 인연이 닿아 이렇게 현웅 스님(육조사 선원장) 만나 뵙게 돼 너무 기쁘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10월 16일 육조사에서 현웅 스님과 로사리오와의 일문일답이다.
문) 선(禪)이란 무엇입니까?
답) 기독교적으로 선을 달리 말하면 ‘사랑’, ‘God(신)’,‘길’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성경 구절인 ‘God is within you.(신은 네 안에 있다.)’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논리적으로는 접근할 수 없지요. 왜냐면 선이란 본래 이름이 없기 때문이죠.
배고프면 배고픈 줄 알고, 화나면 괴로움을 느낄 수 있고,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순간순간 우리 마음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늘 선(진리)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은 선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밖의 색깔(물질, 형상)만을
믿고 선을 등지고 사는 것입니다.
문) 선을 통해서 ‘마음이 열린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요?
답) 마음이 열리지 않는 이유는 형상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손에 물건을 들고 있는 동안에는
다른 물건을 짚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것을 놓아야 다른 물건을 짚을 수 있는 것이죠.
때문에 우리는 형상의 집착을 놓아야 마음의 문을 열 수 가 있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깨달은
사람은 잔잔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고, 깨닫지 못한 사람은
출렁이는 물에서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죠.
문) 집착과 번뇌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하나 경계에서흔들립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 물질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하는 그 마음이 고요해지려는 마음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집착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지 말고 ‘집착하는 동안에도 나는 진리와 같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항상 자기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을 때
집착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습니다. 마치 나비가 거미줄에 걸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거미줄에 더 감기는 이치와 같죠.
사람은 누구나 깨달음(진리, 부처)과 같이 살고 있으나
자기 밖의 보이는 세계에 집착돼 진리가 없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망상이요, 환상입니다.
문) 명상과 선은 같은 것인가요?
답) 명상은 고요함과 혼탁함이 교차하지만 선은 그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파도와 물이 두 개가 아니라는 것과 같습니다.
문) ‘마음공부’를 하는데 스승이 필요합니까?
답) 스승을 믿을 때 문제의 반은 해결됩니다. 혼자 공부하면 자칫 공부 도중 길을 잃고
헤매일 수 있습니다.
스승을 믿으면 필요 없는 노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죠. 모든 종교에는
믿음이 근본입니다.
이날 대화에서 로사리오는 “현웅 스님의 가르침을 들으니 닫혔던 마음이 열린 듯한 심정이다.”며
“쿠바에 돌아가더라도 스님의 오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수행정진 하겠다.” 하고 대화를 마쳤다.
(현대불교 노병철 기자)
대담이 끝나고 기자는 돌아갔다.
하지만 로사리오는 일어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전의 다른 약속을 취소하고 이리로 달려왔고, 오후에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쿠바춤을 가르치는 워크샵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육조사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했다.
좀더 앉아있고 싶다는 것이다.
스님은 점심식사를 아직 못했기 때문에 식당으로 가시고,우리는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대담이 진행되는 동안 육조사 신도들이 한 명 두 명 모여들어 여러 명이 빙 둘러 앉게 되었다.
그리고 스님이 오셨다.
로사리오는 진짜 속마음을 스님께 물어보았다.
"밖에서 오는 고통은 어떻게든 견뎌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깊은 슬픔은 치유가 되지 않습니다."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다른 무엇으로 그 슬픔을 치유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냥 가만히 두고 보는 거지요.
그러면 슬픔이 다른 무엇으로 변하게 됩니다.
당신은 예술가니까,
일테면 예술의 에너지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인간은 생각이 많은데, 그 생각들을 혼자서 없앨 수는 없습니다.
생각으로 생각을 없애려면 자꾸 증폭되기 때문에
힘만 들고 불가능하지요.
그럴 땐, 가만히 두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생각들이 지혜로 변하는 때가 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번뇌가 곧 보리라고 부르지요.
번뇌를 치유하는 길은 그것을 없애는 게 아니라,
지혜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녀는 스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녀는 일어나 동작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춤 철학을 이야기했다.
상당한 고수의 몸짓이었다.
이번엔 스님이 물었다.
"춤이란 무엇인가요?"
로사리오가 대답했다.
"허공에 인간의 몸으로 선을 그려나가는 것입니다."
스님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인생도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육조사를 나왔다.
그녀는 너무나 기쁘다고 했다.
강남의 호텔에서 공연장이 있는 예술의 전당만 왔다 갔다 하느라,
현대적인 서울의 모습만 보고 허전했는데,
떠나기 전 날에 한국의 진면목을 보게 되어 너무 행운이라고 했다.
그리고 현웅 스님에게서 깊은 정신을 보아서,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이번 한국 여행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다음날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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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스크랩해 놓았던 김홍근님의 글입니다.
김홍근님은 육조사 현웅스님의 지도를 받아 참선을 하고 있고, 그 실참의 경험을 인터넷에 일기 형식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그를 모아 일년 전'참선일기'라는 책을 펴내기도 하였지요.
(참고로 김홍근님의 여러 글들은 여기에 있구요... :http://cafe.buddhapia.com/community/khg/)
육조사 현웅스님의 주옥같은 사이버 법문을 보실 수 있는 곳의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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