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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7 후세 - 여행의 교차점 9


여지없이 아침이 밝아온다.

요사니는 오늘도 찍사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해가 뜨기전에 밖으로 나간다.

다리를 비롯하여 온몸이 뻐근하지만 기분좋을 만큼 피곤하다.


포터들이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게 움직인다.

오늘이 트레킹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더 활기찬 것 같다. 곤도고로 패스를 넘는 포터들은 대부분 후세(Hushe, 3050m)와 칸데(Kande)에 살고 있다. 이들은 오늘 집에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더 기뻐하는 것 같다.

가이드인 익바르를 비롯하여 아하마드, 이스마엘등의 집이 칸데 주변에 있다. 이들은 후세로 하산한 후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겠다고 이미 약속한바 있다. 


어제 밤 늦게 사이쉬초(3330m)에 도착해서 잘 몰랐지만 이미 주변은 푸른 색으로 가득차있다.

심지어는 키 큰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이 무성할 정도이다.

곤도고로 빙하는 북쪽으로 1Km 지점에서 강으로 탈바꿈되어 흐르고 있다. 또한 사이쉬초는 초고리사 빙하와 차락차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이 곤도고로 빙하의 물과 합수하여 후세강의 출발점이 되는 곳에 위치하여 있다.



                                                                   <사이쉬초의 아침 - photo by yosanee >


하늘은 아주 맑고 대기는 청명하다. 아침에는 좀 추웠지만 몸을 움직이니 좀 나아진다.

해발 3000미터의 쾌적함에 발걸음이 오히려 가볍다. 멀리 조그만 나무다리가 보이고 그 밑으로 후세강이 흐른다.

푸르름 만큼이나 오랜만에 보는 강의 힘찬 흐름에 고무된다.




                                                       <후세강의 나무 다리 -photo by yosanee >




강을 우측에 두고 걷는다. 강물 흐르는 소리가 경쾌하다.

단지 10여일 간이었긴 하지만 푸른 색과 강물 흐르는 소리가 새로울 정도로 다른 세상에 있었던 것인가.

오로지 검은색과 흰색과 회색빛으로 이루어진 빙하의 거친 세계로부터 하루 만에 다른 세상으로 탈바꿈되는 이 시공간이 색다른 느낌을 주고있다.

강물은 왜 흐르는가. 생명체는 왜 푸른 빛이어야 하는가.

이런 원초적 질문에 스스로 놀라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아름답고도 발에 부담을 주지 않는 평평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가던 길에 조그만 개울을 만났다.

근 열흘만에 떡이 진 머리를 감아본다.

머리를 감다 앞을 바라보니 곤도고로 패스에서 바라보는 황천을 연상케하는 봉우리의 뒷면이 우뚝 솟아있다.

라일라와 트리니티 연봉의 뒤쪽 편인 것이다. 개울 물과 어우러진 이 뾰족한 봉우리들의 군집에 가슴이 시려온다.

이들은 왜 이리도 뾰족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추가되었다.








강폭이 넓어지고 태양은 솟아오른다. 부석부석한 길바닥의 먼지도 몇 걸음 떼다 보면 일어났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대지는 건조하지만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오히려 마음이 차분하게 젖어온다. 이 아름답고 자연스런 길을 걷다보니 마치 봄바람에 취하는 것 같다. 이런 황홀한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종착점은 다가오고 있다.


또 다시 트레킹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트레킹 즉 여행이란 무엇인가. 매번 반복되는 이런 질문조차 나에게는 원초적 질문이다.

고도를 높이는 수직의 여행에서는 오르는 그 높이만큼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게 되는 것 같다.

척박함, 황량함과 장엄함 앞에서 떠올리게 되는 근원적인 물음으로 세계와 그 안의 자신에게로 다가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등산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지 모른다.

높아지는 고도만큼이나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시간의 지층이 파여지고 그 속에서 세계내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과 그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다.

반면 우리는 수평의 여행을 통해 새로운 문화와 전통을 체험한다.

자신의 모든 주의와 지각은 외부로 향하게 되고 그를 통해 밖에 현존하는 '그들'을 알게 된다.

결국 수평의 여행을 통해 자신 이외의 세계와 타자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리라.




걷는 길에 몇 명의 마을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곳의 지명과 저 멀리 봉우리의 이름을 묻게 된다.

주변의 작은 산 사이로 마셔브롬의 웅장한 모습이 처음으로 눈 앞에 나타났다.



마셔브롬의 반대 방향으로 곧게 걸으면 후세 마을이 멀리 눈앞에 나타난다.






후세마을의 초입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동네 아이들의 환대를 받았다.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신명나게 춤을 추면서 놀이를 한다.

익바르의, 이스마엘의, 아하마드의 아들들인 것이다.


이들도 거대한 흐름 속에서 순환하게 될것이다.

익바르를 비롯해 발티스탄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우리와 마찬가지로 교육에서 찾는 것 같다.

그 결과 순환의 고리를 다른 형식으로 바꾸려고 할 것이다. 어떤 방법이 최선이 될런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후세 마을>



작은 집들과 상점과 인접한 작은 도로가 마을의 중심부로 향하여 연결되어 있다.

몇 대의 트럭 뒤로 너른 풀밭이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있다. 트레킹의 최종 기점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에서 포터들에게 그 동안의 댓가를 지불하게 된다. 조금의 보너스라도 더 받고 싶어하는 눈초리다.

다른 팀이 돈을 지불하고 기념 촬영을 하는 것을 보면서 또 하나의 트레킹이 막을 내린 것을 느낀다.


지난 보름간의 K2 트레킹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삶의 한 계기로서, 보름동안 겪게 되는 몸의 지난하고도 고된 일정에 상념이 개입하여 자신만의 시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상념의 세계는 어떠한가.


상념의 장막 너머에서 삶과 죽음으로 끝없이 순환하는 단순화된 세상과 그 척박한 환경에 발붙인 푸르른 생명체의경이로움을 맛본다. 순례자는 그 속에서 일상의 의미를 묻지만 일상의 배후에 있는 좀 더 미세하면서 근원적인 일상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세상이 각자의 꿈과 염원으로 만들어지는 세계이며, 그 세계는 시간의 지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된다. 


꿈과 염원의 근원을 알기 위해 삶의 지층을 파 보면, 그 원동력으로서의 욕망과 분노 덩어리들이 묻혀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도전, 성취에 대한 갈망 등이 그 비밀의 한구석에 있음을 알게 된다. 내면의 두려움이 결국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체험을 통해 느끼게 된다. 또한 끝없은 걸음 속에서 세상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무엇인지를 귀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몸을 통해서 각인된다.


결국 세상이 던지는 온갖 의미란 자신이라는 필터로 세상에 다시 비출 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삶은 그 의미를 순환적으로 다시 묻게되는 것이다.


2년전의 트레킹은어떤 의미인가. 

사실 나는 자신과 세상을 디테일하게 보는 방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대부분의 것들을 흘려보내게 된다.

하나의 물방울조차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는 인간의 언어로서 광대한 자연을 제대로 묘사한다는 것이야 말로 어불성설일 것이다. 가장 좋은 사진기라 해도 사진을 2차원 평면에 보여줄 뿐 자신을 둘러싼 3차원공간 아니 수십 차원의 켭켭히 둘러싸인 주름진 공간의 흔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한 존재가 소화한 자신의 흔적을 통해 세상을 그 방식대로 보게 될 뿐인 것이다.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얽혀있는 세상의 복잡함과 다양함은 매순간 폭류처럼 내 주변을 흘러 지나가지만, 의식은 자신에게 의미있고 인상적인 몇 가지 사건만을 간추려서 기억해 놓을 뿐이다. 또한 그 인상적인 사건이 내면에 남긴 자취로서 시간의 지층이 형성되는 과정을 들여다 보려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모든 사건을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그것의 진실성을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그 방식 자체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구축되어 있는 시간의 지층이라면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바라봐야만 할 것이다. 그런 반성이 바탕이 되어 내면의 여행이 시작되며 세상에 그 확실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여행은 특히 트레킹은 일상을 추상화(abstract)하듯 미분하고, 적분한 결과 남겨진 총체적 인상과 더불어 남아있는 이미지들 만을 결국 간직하게 된다. 또한 기억 너머로 몸에 각인된 수 많은 경험의 차원들을 같이 떠올리게 된다.

K2의 흔적은 발토로 빙하 이후 지금까지도 내 몸에 남게 된 거친 냉기의 흔적 뿐만 아니라, 아직도 내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도 계속해서 세계와 존재에 대해 물어왔고, 결국 자신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을 일상이라는 의미를 통해서 던지고 있다. 

일상에 대한 기억은 수많은 걸음의 행로가 적분되어 그것을 회상하는 현재의 자신에게 나타나는 총체적 모습으로서의 기억이다. 그를 통해 나는 과거의 세계를 파악하고 현재의 일상에 적응시키고 일치시키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파악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실히 알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회상 또한 수직의 여행인 것이며 내면의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요사니는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나처럼 트레킹의 마지막을 아쉬워했던 모양이다.

공산님을 바라보니 무언가 쉴 새없이 적고 계셨다.

두툼한 수첩에서 자신의 여로를 확인하며 뿌듯해 하는 것 같았다.

요사니가 멋적은 웃음을 지으면서 나타났다.

한참을 늦은 것에 대한 미안함을 사진기를 흔드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한 값진 트레킹이었을 것이다.


쉬고 있는 우리에게 익바르가 귀띔을 해준다.

수직으로 1400미터를 솟은 아민브락(Amin Brakk, 5900m)이 근처에 있다는 것이다.

하루 산행이면 그 대단한 직벽을 바라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며 빙긋이 미소지었다. 모두들 더 이상 저 산 너머를 궁금해하지 않는 듯 했다.

근 보름만에 보는 반가운 짚차의 시동이 걸리고 우리는 좀 더 자유롭게 짚차의 짐칸에 올라탔다.


이제 어딘들 못가겠는가. 빙하의 한자락이 녹아 내려 강이 되어가듯 자유롭다.

세상이 좀 더 명료하고 뚜렷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순간적으로 달라져 보이는 이 세상은 열려있고 텅비어 있고 밝게 빛나고 있다.

수직의 여행이 끝나고 수평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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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