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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3 K2 - BC 주변 4
2009. 8. 3. 23:21


밤새 싸락눈이 사각사각 쏟아진다. 20명 이상은 잘 수 있는 대형텐트 위로떨어지는 그 소리가 아름답다.

등정을 끝낸 팀에게 눈이란 아름다움이겠지만, 등정을 하고 있는 팀에겐 곤욕이 아닐 수 없다.

밤에 일어나 나가보았지만 사방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춥기만 하다.

아마 영하 10도 이하는 될 것같다. 요사니는 하계용 침낭을 가져와서 그동안 계속되는 추위에 고생하다가 김창호대원이 빌려준 오리털침낭에 들어가 오랜만의 따뜻함에 감격한 듯하다.

요사니와 나는준비를 잘못해서 침낭도 변변치 못했고, 짐을 줄이느라 우모복도 챙겨오지 못했다. 발토로빙하에서 매 번 추위에 떨면서 잘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만난 오리털침낭이니 요사니가 너무나 반가워할 수 밖에...


                                                            < 눈에 덮힌K2 BC >


아침이 밝아왔다. 세상이 하얗다.

남의 원정대 텐트에서 신세지는 것도 모자라 늦게까지 잘 수가 없어서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킨다.

멀리 빙하의 빙탑 너머로 콩코르디아가 보인다. K2의 연인인 초고리사는 하단부 일부만 얼핏 보일 뿐이다.

역시나 어제 저녁까지 텐트 앞을 흐르는 빙하천이 얼어붙어 물이 흐르지 않는다. 빙하천 건너는 온통 빙탑뿐이다.


                                                        < 아침 나절의 콩코르디아 >



원정대의 규율은 상상이상이다. 대원 각자 마다 자기가 맡은 임무가 있으며 철저하게 맡은 일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정상을 오를 수 있는 팀웍이 생기기 때문이다.


부산원정대는 K2를 성공리에 등정한 기세를 몰아서 바로 옆의 브로드 피크를 등정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따라서 K2 BC의 짐들을 브로드 피크 BC로 옮기려고 하고 있다. 성공하거나 실패한 몇몇 외국 원정대는 철수하고 있다.


K2의 K는 카라코람 지역의 봉우리란 의미로, 카라코람의 K를 따서 일련번호를 매긴 것이다. 따라서 K1은 마셔브롬(7821m), K3는 브로드피크(8047m), K4는 가셔브름 II(8035m), K5는 가셔브롬 I(8068m)로 불리웠다. 마셔브롬보다 K2가 높기는 하지만 인도의 스리나가르 쪽에서 보면 마셔브롬이 더 높게 보여서 K1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다른 K 시리즈의 봉우리들이 자신의 이름을 가질 때, K2라는 이름이 살아남았던 이유는 에베레스트에 이어 세계 제2위봉이라는 상징성 때문인 것이다.


K2는 1892년 영국의 원정대를 시작으로 1902년 영국,오스트리아, 스위스 합동원정대, 1909년 아브루치 공작이 이끄는 이탈리아 원정대가 6250m까지 올랐다고 하며 이때 이탈리아 원정대가 오른 루트를 ‘아브루치 능선’으로 부른다. 이 능선은 이후 K2를 오르는 가장 일반적인 루트로 이용되고 있다. K2가 처음으로 정상을 허락한 때는 1954년 이탈리아 원정대에 의해서이다. K2는 23년이 지난 1977년 일본 원정대가 두 번째로 정상에올랐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산이다. 

우리나라는 1986년 대한산악연맹 원정대가 처음으로 올랐는데, 이 시즌에 무려 13명의 외국원정대의 대원과 포터들이 사망하였다. 이번 시즌 K2에는 모두 15개의 팀이 들어와있다고 한다. 그중 한국팀과 미국팀은 성공했으나 슬로베니아팀등 몇 팀은 실패를 하였고 몇 명의 사망자가 생기기도 하였다. 지금도 저 산에는 등반중인 팀이 있는 것이다.



                                                                     <철수중인 외국원정대>



                                                                     < 여성원정대 캠프 >


우리는 여성원정대 캠프로 가서 오은선대장과 함께 K2 메모리얼로 향하였다.

K2 메모리얼은 지금까지 K2에서 사망한 60여명의 산악인을 기리는 돌탑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8번에 걸친 K2한국원정대원중이 산에 묻힌 4명도 포함되어있다. K2는 등정성공율이 30%밖에

되지 않는 히말라야의 8000미터봉 중 가장 어려운 산이다. 따라서 K2는 '등반가의 공동묘지', '죽음을 부르는 산' 등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BC에서 K2를 등반하기위해 ABC(Advanced Base Camp)로 가는 길에는 아직도 수습되지 않은 사체들이 많이 눈에 띈다고 원정대원들이 말해준다. K2가 워낙 우뚝 솟아있는 급경사라 뭐든지 쓸려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K2는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이 보이는 피라미드 꼴의 산이다. BC에서 정상까지 고도차가 3500미터에 달하며 고개를 치켜들어야 정상을 볼 수 있다. BC에서 보는 K2는 말 그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크기의 피라미드이다. 

그래서 그런지 K2는 정상까지의 등반구간에 단 1미터의 내리막길이 없다고 한다. 

BC에서 보면 K2 정상이 보인다. 엄밀하게 정상은 아니고 정상을 이루고 있는 정상마루라고 한다.


                                                    < K2 메모리얼의 추모동판 및 기념물>


오은선대장이 여성원정대의 캠프로 초청하더니 비장의 음식인 잔치국수를 삶아주었다. 조금 불긴 했지만 별미 중 별미다.


날씨가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하더니 주변의 산군이하나 둘씩 구름을 뚫고 나타나기 시작한다. 스킬브럼(Skilbrum, 7360m)의 정상부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스킬브럼은 1957년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브로드피크를 등정한 후 10일만에 초등한 봉우리이다. 헤르만 불은 당시 브로드피크는 초등했으나 스킬브럼 대신 초고리사로 향하였고 결국 눈처마 붕괴로 초고리사의 품에 잠들었다.

여성원정대의 한 대원이 K2의 날씨는 초고리사를 보면 알수 있다고 귀띔한다. 초고리사가 맑게 보이면 K2도 맑아지고, 초고리사에 구름이 끼게 되면 K2도흐려진다고 한다. 이래서 초고리사를 K2의 신부라고 부르나 보다.

초고리사에 낀구름을 보고 바로 K2를 바라보니 역시 짙은 구름에 가려져 있다. 이 오묘한 자연의 궁합이여...





                                      < 스킬브럼(Skilbrum, 7360m, 우측)과 구름에 덮힌 초고리사 >



한편에서는 브로드피크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브로드피크는 3개의 봉으로 이루어졌다.

주봉(8047m), 중앙봉(8006m), 북봉(7538m)의 3 봉우리가 넓게 포진하여 정상부를 이루고 있는데 K2 BC에서 보니

영락없는 뫼산(山)자 모양이다. 브로드피크의 초등은 1957년 오스트리아 원정대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1984년 브로드피크에서는 놀라운 등반이 시도 되었다.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Jerzy Kukuzka)와 보이텍 쿠르티카(Voytek Kurtyka) 둘이서 브로드피크 3개봉을 한 번에

등정한 것이다. 이들은 브로드피크를 서릉으로 올라 북봉 ∼ 중앙봉 ∼ 주봉을 연결하는 세 개봉 종주등반을 5일만에 해낸 것이다. 그리하여 山자가 처음으로 연결되었다.



                                                            < 브로드피크 - 山 모양의 산>



                                                         < BC에서 보는 K2 정상 - by yosanee >


마침내 BC에서 정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3500미터를 치솟은 이 거대한 피라미드는 그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을 것 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왜 산에 오는가. 그리고 왜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가.

과연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르려는 것인가.

K2 베이스캠프는 남향이지만 저녁이 되어 해가 떨어지면 음습한 기운이 감돈다.

산과 산 사이에 꽉 가로 막혀 앞에는 괴기스런 빙탑들이 솟아있고 그 사이로 살을 에는 바람만 씽씽부는 그야말로

황량하고 척박한 얼음의 땅이다.

이 곳에선 고독을 느껴보려고 하기도 전에 이미 고독에 쓸려갈지도 모른다.

이들은 왜 여기에 있는가.

등정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알아보려는 것인가 아니면 오르려는 '높이가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척도에 비례' 한다고 믿기 때문인가.

그러고 보면 이들은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禪師를 빼닮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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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