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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23 숨, 연민 그리고 공감 - 4성제를 생각하며 5

지난 몇 달간 호흡기 질환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흔한 감기로 시작하더니 얼마있다 비염이 심해졌다.

냄새를 근 1달이상 못 맡았지만 병원을 안가고 버텼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몸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

비염이 조금 물러가더니어릴 적 앓았던 기관지염으로 도졌다. 한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심하게 앓았다.

조금 나아지더니 그것도 잠시 바로 목감기로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다.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그리고 내가 끊임없이 세월에 저항하는구나... 지금의 나를 아직도 과거의 나라고 생각하는구나라고...

그리고 내가 저항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몸은 더 이상 나의 의지처럼, 또 나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의 모습은 짧아졌고(아 늙어가는구나..) 세상에 대한 우울을(그 혐오를) 이해하게 되었다.

표면적으로 이게 부처가 말한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라고 한다면 동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생로병사 - 태어나는 것은 순간이지만 老와 病과 死는 삶의 막판에 폭풍처럼 몰아쳐온다.

그래서 부처는 네 가지 진리인 고통과 집착과 그 멸절과 그 험난한 극복의 길(苦集滅道)을 말했을 것이다.

부처의 언설 뒤에, 그 조차도 어쩔 수 없었던 늙어가는 유한한 몸만이 댕그러니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을 위한 삶의 힘은 우리의 인정이다.

그리고 나의 수용이다. 설혹 나의 의지대로가 아니라 해도 결국 이 고단한 삶을 다시 복기해야하고, 또 다시 재배열해야 하는 거다.

그래서 네 가지 진리로 향하는 길의 첫발자국은 수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수용 속에서만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있고, 수용 속에서만 나는 타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중심일 수 밖에 없는 나의 지평은 타자의 실존과 아픔을 통하여 더욱 더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지평의 끝이 설혹 너무 멀어서 끝이 안 보인다 해도, 타자의 지평을 통해서 나는 나의 지평을 알게 되고

다시나의 지평을 통해 타자의 지평을 상호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공감이며, 자기연민에서 벗어나 타자와 함께하는 길이며, 고통과 집착의 진정한 객관화가 될 것이다.

그래야 결국 부처가 말한 그 네 가지 진리를 향했던 참 뜻이 되살아나서 새롭게 다가오는 그런 길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욕망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작은 악순환으로 인해, 도돌이표와 같은 큰 악순환(윤회)에 끊임없이 빠지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나의 웃음 뒤엔 연민이, 연민 뒤엔 공감이 놓여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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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