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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04 천화대 희야봉 - 포획 6

어부는 희미한 수평선 너머를 응시하고, 울프는 검은 하늘에 걸린 달을 응시한다.

그러나 이들이 원하는 것은 거기에만 있지 않다.이들의 공통점은 오히려 잠복해버린 것의 ‘포획’에 있다.

I. 포획

산꾼들은본능적으로 뭔가를 포획하기 위하여 산을 찾는 법이다. 그리고 그 산벗들의 목표는 매번 다를 것이다. 그것이 자연과의 합일일지, 속세와의 짧은결별일지, 아니면 지겨운 것들로 부터 벗어나 새로운일상과의 조우일지는 그 자신만이 알 일이다. 그리고 산 중에서 그들은 잠복된 포획물을 하나의 상징으로 표현한다.

도착 바로 직전까지도 그들은 자신이 목적한 바를 모르다가 어느 순간홀연히 알게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자신만의 표현으로 구체화한다. 굳이 사진일이유도, 글일 필요도 없다. 남긴 것은 어딘가에 있으나 그 자신에겐 명확하지 않다. 남겨둔 것을 찾기 위해또다음번 포획을 결심한다.


몇몇 벗들은 금번 천화대 희야봉 꼭대기에서 획득한 자신의 포획물을 다음과 같이 내놓는다.

photo by如如同行 (http://blog.naver.com/profolio)

하늘의 꽃길.....

희야봉에서 내려다 본다.

해는 져도

바위는 있다.

다시 아침이 오면

용쓰는 산꾼들이 보이겠지.

나는 지친 육신을 누이고

정신은 허공을 헤메인다 ~~~

by如如同行


photo by yosanee (http://blog.naver.com/yosanee)

바람 한 점 없는 꼭대기에 누워

선 잠 위로 쏟아지는 별을 헤려다

바람 한 줄기 설핏 꿈을 흔들고서야

어슴푸레 붉은 동해에 눈을 적시다


by yosanee

이들은 마치 울프처럼 긴 몸집 웅크려곧 사그라져갈 그믐달을 노려본다.잠 속도 아니고 깨어있지도 않은 경계가 주 활동시간이고, 허공과 땅의 경계가 그들의 잠자리다.





photo by如如同行



밤새 누웠더니

허리아래 돌맹이 하나

머리속에 하산 걱정

우측의 허전함

요사니의 이야기로 인한 다리의 허전함


온통 공중을 날라 다니는

잡념에 잠을 설친다.


침낭 속으로 들이치는

바람이 기분좋게 느껴지며

날리는 비닐 소리가 기상 나팔인양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동해바다에 붉은 선이 보인다.


눈을 떠서 나와

사라져 가는 밤의 흔적을

찾는다.


희야봉 그믐의 밤은

해가 떠오르는 동해로

추락하고 있었다


by如如同行



II. 접근

이들이 풍경을 사냥하기 위해 어떻게 접근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볼 차례다.
예전부터 설악산의 비경에 순위를 매기기를 1경은 천화대요, 2경은 공룡능선 1275봉에서 바라보는 외설악(천화대)라고 하였다. 그러나 천화대는 일반인들로서는 접근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암릉코스인데 아주높은 등반수준을 요구하진 않지만, 반드시 자일로 확보하거나 하강해야하는 쉽지 않은 코스다.
천화대의 암릉은 그야말로 칼날같은 릿지의 연속이며, 이 칼날릿지는 양쪽에 두개의 계곡을 거느리고 있다.
잦은 바위골과 설악골이 그것이다. 잦은 바위골은 7형제봉 릿지와 천화대 릿지를 나누는 계곡이고, 설악골은 천화대 및 석주길 암릉과 1275봉 지능 등을 나누는 계곡이다.

잦은바위골 - 50미터폭포 - 100미터폭포 - 천화대릿지 - 희야봉정상(비박) - 천화대릿지 - 왕관바위 - 사태골 - 설악골에 이르는 코스이다.


설악캠프장에서 비박한 후 비선대를 지난다.

잦은바위골 입구에서 30분 정도 들어간 곳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계곡은 아주 좁은 협곡이라 계곡을 따라 진행하다 폭포나 바위를 만나면 계곡 위쪽으로 우회하는 형태의 길이 이어진다. 약간 큰 폭포를 만나서 우측으로 30여미터를 올라서 우회한다. 우회길 마지막에는 바위길을 트래버스 해야하는 험로에 봉착했는데 오랜만에 경험하는 고도감에 가슴이 시려온다. 형식적이나마 보조자일을 설치하여 통과하였다.


photo by如如同行


계곡의 폭은 10-2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당연히 비가 오거나 비가 올것 같으면 들어갈 수가 없는 길이다.

물이 조금이라도 불어있으면 신발 젓을 각오도 해야할 만큼 좁은 계곡길이다.



3미터 정도 높이의 바위길인데 배낭 무게 때문에 몸이 우측 옆으로 쏠린다. 어쩔 수 없이 보조자일을 설치하여 통과하였다.




photo by如如同行



10분정도 오르니 선계(仙界)가 열린다. 계곡이 좌우 협곡으로 나뉘는데 사방 어디에도 갈길이 보이지 않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우측 계곡으로 오르는데, 이런 경치는 어디에도 없다고 할만큼 압권이다.

물길 옆의 절벽으로 길이 열린다.





급사면을 오르니 약 4-5미터 정도의 절벽을 내려와야 하는데 바로 우측은 밑이 보이지 않는다. 고도감이 대단하다.





험로를 벗어나니 7형제봉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50미터 폭포에 도착하였다. 이 좁은 계곡에 이런 넓이와 이런 높이의 폭포가 있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앞으로 보게 될 100미터 폭포는 이것의 2배라고 하는데 궁금하기만 하다.





50미터 폭포 옆을 우회하여 산길을 오른다. 경사면이 점점 눈앞까지 올라온다.





고도를 높이면서 7형제봉이 더욱 더 다가온다. 그럴수록 길은 더욱 험해지고 네발로 기어오른다. 무거운 배낭은 밑으로 몸을 잡아 끌어 숨이 더욱 턱에 찬다.






100미터 폭포에 도착하였다. 50미터 폭포보다 배는 높아 보인다. 물이 흘러내릴 곳은 이렇게 앞 산의 능선을 깎아서 밖에 나올 곳이 없을 정도로 사방이 막혀있다. 저 너머가 궁금하다.




마침 원주민인 살모사를 만났다. 살모사치고 통통한게 최근 먹이를 섭취한 듯하다. 재빠르게 사라져간다.




이제 희야봉 안부까지는 길을 조심해서 찾아야 한다. 그래야 희야봉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태난 계곡길을 조심스레 오른다. 낙석이 아주 심하다.





100미터 폭포의 옆으로 오르는 길 역시 대단한 고행이다. 경사의 정도가 남다르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고도 역시 쭉쭉 높아진다. 7형제봉의 전모가 조금씩 보인다.




마지막 물을 만나서 식수를 길었다. 길인지 아닌지 애매한 상류 계곡 너덜 길을 1시간 정도 올라 마침내 천화대 능선과 만났다. 바로 눈앞이 희야봉이다.






바다 쪽을 내려다 보니 천화대의 장관이 그대로 보인다. 세존봉도 울산바위도 적벽도 장군봉도 반갑게 세상에 펼쳐져 있다. 남쪽으로는 화채봉과 만경대도 생생하다.







20여분 더 오르니 희야봉과 석주길이 만나는 석주길의 종점에 도착하였는데 고도감이 장난이 아니다.




마침내 비박장소에 도착하였는데포획을 하기에는 술이 부족한게 흠이었다.

밤새도록 산의 실루엣,속초의 불빛,그믐달, 뭇 별들이 스쳐지나가고 스쳐지나왔다.

산에서는 꿈꾸지 않았다. 그 전체가 그냥 꿈일 뿐...



photo by如如同行


희야봉의 아침은 바람과 함께 시작된다. 바람소리가 비박용 비닐에 스치울 때 우리는 깨어난다.

눈 앞의 범봉에는 이미 몇몇 팀이 등반 중이다.





이제 하산이다. 잠시나마 천화대 릿지를 감상하면서 왕관바위까지 내려가는 길로 접어든다.







1시간 정도 걸려서 왕관바위 바로 밑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부터는 계곡길로 하산해야 한다.



이 계곡은 사태골로 불리운다. 그래서 그런지 계곡의 경사가 급하다. 설악골 합수지점 거의 다와서 벼랑이 나타난다.

보조자일을 설치해서 하강하였다.





마침내 설악골이다. 예전에는 설악골이 이렇게 넓은 계곡인지 몰랐다. 잦은바위골에 비해서 수량도 몇배는 많은 것 같다.





약 1시간 정도를 내려오니 천불동과 만나는 지점이다.





정말로 '꿈과 같은' 1박2일 산행의 종료이다.


III. 포획의 의미

아주 주관적인 생각이지만,사실 산을 오르는 것은 기득권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중력의 법칙상 오르는 만큼 에너지 준위가 높아지는 것이고, 에너지 준위가 높아지는 것을 기득권의 획득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럼 내려가는 것은 이미 획득한 기득권을 잃는 것이 될 것이다. 내가 낙하하는 물체가 아닐진대 중력에너지가 높아진다고 기득권이 올라가겠는가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보자면 오르는 것이 기득권을 얻는 것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오르려고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물체는 올라갈수록 기득권을 획득한다. 밑에서 파는 콜라와 산꼭대기에서 파는 콜라 값의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물체는 그렇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게 물체와 사람의 차이이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 사람이 오르는 것은 기득권을 잃는 것이다. 내려가는 것은 기득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에 오르기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다. 혹 올랐더라도 빨리 내려가길 바라는 것이다. 오를수록 기득권은 사라져간다. 그래서 에베레스트 같은 설산을 오르는 사람은 경우에 따라 자신의 생명마저도 담보로 하지 않는가.
그러면 기득권의 포기를 통하여 얻는 것은 무얼까? 바로 정신적 포획물이다. 정신적이라는 말처럼 포획의 대상은 명확하지 않다. 지겨운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거나 새로운 풍경일 수도 있겠고, 의식의 확장이거나, 새로운 가치의 획득이거나, 정신적 깨달음일 수도 있겠다. 경우에 따라 진정한 포획은 심지어는 목숨을 담보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척간두 진일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매번의 산행에서 내가 얻어가는 것은 다시 오겠다는 다짐만은 아닐거다. 그동안 행했던 수많은 산행들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던가. 매번 내가 획득한 포획물은 무엇이었던가. 그 가치가 나로 하여금 무엇을 위해 사용하게 만들었는가. 이제 내게 남는 것은 포획하는 행위의 승화, 포획된 것의 승화이다. 그를 통해 다음번 포획을 준비하는 것만이 나에게 유일하게 남는 것이 아니게 되길 바라는 것이다. 기득권의 포기가 결국은 고도를 높이는 산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삶의 도처가 산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되는 것. 이것이 적어도 세속에서 포획과 기득권의 함수적 관계로 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포획은 사물의 포획이 아니다. 포획을 통한 자기와의, 또는 그 무엇과의 만남이다.


IV. 어부와 울프

'어부산악회'라고 있었다. 처음엔 몇몇 지인(知人)들끼리 다니다 조금씩 확장해서 활동했다가, 쉬었다가, 아니 다시금 부활(?)해 가는 산악회다. '한번 어부는 영원한 어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자!' 등이 어부산악회의 슬로건이다. 슬로건은 나름 아주 멋지지만 산행스타일은 '어영부영'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어부산악회를 '어영부영산악회'라고 불렀다.남들이 산에서 산노래를 부를 때, 어부산악회는 어부가를 불렀다. 산속에서 들리는 '떠나가는 배'는 장엄했다. 게다가 한번 산행에 참석하면 자기의 의사와 관계없이 무조건 어부산악회 회원이 되었다. 한마디로 낚인 것이다. 저인망식 쌍끌이 어선의 어부처럼 한 때는 몇백명의 회원을 포획해두었던 적도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활동이 뜸해진 어부산악회 회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독자산행을 했다. 집단적 포획행위 대신 나홀로 포획행위를 했던 것이다. 어부들은 조금씩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밤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특히 보름날의 밝은 달을 향해서... 그래서 1년 남짓 전에 울프산악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울프의 특징은 노숙이며, 그것도 밤하늘의 달이나 별이 가장 잘보이는 곳에서 하는 포획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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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들 불